▲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읽고 다시 읽었다. 혹시 내가 빠트렸나 해서 거듭 읽었지만 찾지 못했다.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한 퇴임 연설의 전문에서 나는 ‘노동정책’은 어떻게 자평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노동’을 찾았지만 없었다.

퇴임하는 대통령 문재인은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고 응원하겠노라고 연설하고 있었다. “그동안 과분한 사랑과 지지로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그리고, 이제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돌아가 국민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며 성공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응원하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중요 성과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틈만 나면 ‘노동존중’을 말해 왔던 대통령인데도 노동정책에서 어떤 성과를 냈노라는 언급은 없었다. ‘국민 여러분’을 상대로 하는 엄숙한 자리에서 ‘국민’ 분열의 개념인 ‘노동’ ‘노동자’ 운운한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본 것인가. 노동자에 대해 사용자가, 노동에 대해 자본이 따라 나오니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통합을 말해야 할 자리라서 퇴임사에 포함하기에는 타당하지 않다고 본 것인가. 졸지에 퇴임 연설에서 노동에 관해서 언급한 것을 구체적으로 살펴 비판하고자 했던 나는 다른 데서 찾아야 했다.

2. 문재인 정부 5년 간 국민들이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 노동정책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도입’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는 지난 3월20일부터 이달 5일까지 홈페이지 내 '문재인 정부 국민보고'에서 분야별로 문재인 정부 대표 정책에 대한 온라인 투표한 결과 이같이 조사됐다고 6일 밝혔다. 구체적으로 주 52시간제 도입이 48%, 저소득 가구 근로장려금 확대 정책이 15%, 특수고용자 및 플랫폼 종사자의 고용보험 확대 정책이 14%,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10%,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 도입이 7% 순이었다.

주 52시간제 도입이라니. 주휴일 등 휴일 근로까지 포함해서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근로하는 걸 규제하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시행한 것을 두고서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한 노동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는 유감이다. 개정 전의 근로기준법에서도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 근로할 수 없고(50조), 이에 대해 노사합의로 1주에 12시간까지 연장해서 근로할 수 있노라고 규정해서(53조) 연장근로까지 포함하더라도 1주 52시간를 초과해서는 근로할 수 없는 것으로 정하고 있었다. 단지 고용노동부만이 주휴일 등 휴일의 근로는 여기서 1주 52시간의 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1주일에는 일요일 등 주휴일이 제외하고서 5일, 6일이라고 행정해석해 노동현장에서 부당하게 집행해 왔을 뿐이었다. 위법·부당한 행정해석이니 문재인 정부가 행정해석을 바로 잡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서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는 황당한 입법을 하면서 이 나라 노동자들이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일요일 등 주휴일에 근로를 해도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모두 지급받을 수 없도록 하고 말았다. 이러한 입법은, 당시 노동자들이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주휴일 등 휴일근로에 대해 연장근로에 해당한다며 그 수당을 청구해서 소송을 하고 있던 사건들에서 대법원이 연장근로로 인정하지 않는 판결의 근거로 삼게 했다. 더구나 이와 같이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면서 주 52시간제에 대한 예외를 두고 시행의 유예를 인정했다.

이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도저히 나는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제 도입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가 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온라인 투표한 국민 여러분과 달리 나는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제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3. 1일 노동절을 맞이해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는 지난 5년, 노동기본권 보장에 온 힘을 기울였다”고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남겼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에게 “132주년 세계노동절을 축하한다”면서 남긴 글이었다. 문 대통령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을 비준했고,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노동 분배를 크게 개선했고 일과 생활의 균형에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이어 예술인,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종사자의 고용보험 적용 확대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한 기대도 덧붙였다. 이 노동절 메시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동안 행했던 노동정책에 대한 자평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자평하고 있는 것은 이 메시지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꼼꼼히 읽었다.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해 시행한 데 대해서는 굳이 부족한 점이 무엇이라며 탓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에 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메시지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이 노동자를 위해 기여했노라고 자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메시지를 읽었다. 주 52시간제에 관해서는 이와 같은 문재인 대통령의 긍정적인 평가를 납득하지 못하겠노라고 앞에서 자세하게 살펴봤으니, 여기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서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실시된 촛불 대선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2020년이 되기도 전에 경제 사정 등을 내세워 ‘국민 여러분’께 이를 이행하지 못하겠다고 사과하고서 공약 이행을 포기했다. 대통령 후보로서 표를 달라며 대선 공약을 발표할 때에는 경제 등 사정을 살펴 사정이 좋다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기에 이른 올해 5월 현재까지도 이 나라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1만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공약한 대로 2020년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임기를 마칠 때까지는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어야 하는데, 사과 연설 이후에 그가 얼마나 대통령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처럼 내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고 싶은 노동정책도 있다. ILO 기본협약 3개를 비준했다는 것이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 협약, 단결권 및 단체교섭에 관한 98호 협약, 강제노동에 관한 29호 협약 등 ILO 기본협약 3개를 비준한 데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 이것은 이 나라 노동자가 단결해서 교섭하고 행동할 자유를 보장하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해 주고 싶다. 촛불 대선에서 공약한 대로, ILO 기본협약 4개 모두를 비준하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105호 협약까지 비준했더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절 메시지에서 자평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는 “노동기본권 보장에 온 힘을 기울여”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했다고 아낌없이 박수를 쳤을 것인데 안타깝다.

4. 자유는 권력이 주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자유는 (국가) 권력이 법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자가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대해 교섭하고 파업 등 행동하는 자유, 즉 단결의 자유는 국가의 법으로 허용해 줘야 비로소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자유를 박탈해서 예외적으로만 허용해 주고 있으니 국가가 예외적으로 허용해 주는 걸 자유로 착각하는 것이다. 국가가 법으로 노동자가 단결해서 활동하는 걸 제한하고 금지하고 있다면 노동자에게 자유, 즉 단결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처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통해서 주체·목적·시기와 절차·수단과 방법 등으로 제한하고 금지하고 있다면 노동자에게 단결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렇게 알지 못했다. 이 나라 노동자들은 자유가 없다는 걸 알지 못했다. 법으로 제한하고 금지해도 자유는 보장된다고 알았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노동자 자신의 운동인 이 나라 노동운동조차도 자유를 알지 못했고, 제한받지만 자유는 보장되고 있다고 알았다. 그러니 필수공익사업장이나 공무원 등 특별한 노동자 일부가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알고서 주장하고 투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자유, 즉 노동자가 단결해서 활동할 자유로 보자면 이 나라 노동자에게 자유는 없다.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걸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 주체·목적·시기와 절차·수단과 방법 등으로 규제하고서 이를 준수한 경우에만 허용되는 걸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규제를 통해서 이 나라 노동자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나라 노조법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분명히 노동자의 자유는 노조법을 두고서는 보장되지 않는 것인데도 노조법의 전면적 개폐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유는 권력이 주지 않는다. 자유를 빼앗는 자와 그에 맞서 자신의 것으로 행사하는 자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자면 정권이 ILO 기본협약의 비준을 통해서 노동자의 자유가 보장되게 됐다며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진정 자유는 자유를 가진 자의 행동을 통해서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자유는 권력에 의한 ‘노동존중’으로 쟁취되지 않는다. 자유를 빼앗는 권력에 맞선 노동자의 행동에 의해서만 자유는 비로소 노동자에게 보장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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