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노동부가 발간한 책을 한 권 읽었다.
제목은 <노동부의 노동운동의 풍향을 바꿔가는 21인>(이하 21인)이다. 신노사문화운동의 일환으로써 <21인>의 노조위원장을 소개한 책이기에 주의 깊게 읽어보았다. 그런데 실망스럽다.

신노사문화에 대한 노동부의 관점의 문제

'21인'을 보며 여러 대목에서 실망을 느꼈는데 몇가지만 거론하겠다. 첫째 "회사를 살리는 일에는 앞장서겠다. 그러나 경영권 문제까지 깊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대우전자노조 위원장의 인터뷰를 '유연한 사고'로 한껏 칭찬하는 태도이다. 기업경영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고 우리나라처럼 부패가 만연한 기업풍토에서는 적극 권장될 사안이다. 노동부가 그것을 부추기지는 못할 망정 부패한 재벌총수가 망친 회사를 애써 살리면서도 경영권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유연한 사고로 칭찬하다니 말이 될 소리인가.

둘째, 현대건설노조 위원장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민주노총에 대한 악의마저 느껴진다. 현대건설노조가 단 한번도 민주노총 연대파업에 참여한 일이 없음을 잘 아는 노동부가 "올해부터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연대파업에도 동참하지 않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민주노총의 연대활동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셋째,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신노사문화를 보는 관점이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노동부가 <21인>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무쟁의'다. <21인>은 '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 '파업에 지칠대로 지친', '40년 무분규 전통', '파업의 명분이 시대적 설득력을 잃게된 상황',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업' 따위의 표현을 통해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부는 <21인>을 통해 지난해에 비해 줄어든 분규 일수를 예로 들면서 신노사문화가 자리잡아 간다고 평가한다.

이것을 읽으면서 나는 잠시 경총이나 전경련에서 내놓은 책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리고 2001년 노정관계가 왜 그렇게 꼬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 핵심원인의 하나를 비로소 찾아낼 수 있었다.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노동부가 파업에 대해 <21인>에 흐르는 것과 같은 부정적 인식을 버리지 않는 한, 영원히 '신노사문화'는 불가능하다. 노동부가 바라는 '무분규문화'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문화이고, 점점 노조운동의 대세를 형성하는 민주노총과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금융노조를 비롯한 한국노총의 개혁파와도 함께 할 수 없는 논리인 것이다.

현실에는 파업에 대한 두가지 극단이 존재한다. 하나는 <21인>처럼 파업은 나쁜 것이며, 무분규는 좋은 것이라는 시각이다. 자본측과 노동부 상층, 노동조합 일부의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파업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일부가 가진 시각이다. 두 극단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파업은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노사, 노정 사이의 갈등을 푸는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사용자측에는 자본이라는 힘이 있고, 정부에는 법과 권력이라는 힘이 있고, 노동자에게는 파업이라는 힘이 있는 것이다. 노사정은 각자가 지닌 힘을 바탕으로 협상하고 투쟁하면서 사회발전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여기에 신노사문화의 핵심이 있다.

신노사문화 구축의 핵심은 캠페인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노동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신노사문화 운동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노사협력 우수기업 벤치마킹', '신노사문화 우수기업 중앙협의회'를 가지고 시비를 걸 생각도 없다. 그러나 노동부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 노력으로는 결코 신노사문화를 대세로 만들 수 없다. 그것은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목적의 신노사문화운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신노사문화'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똥고집을 부리거나 어거지를 쓰지 않는 '자연스런 관계'의 문화이다. 열린경영과 성과배분을 바탕으로 노조는 사측의 경영주도성을 인정하고, 사측은 노조를 인정하는 것이 신노사문화다.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노사정관계에서도 그렇고 파업과 무분규가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신노사문화'인 것이다.

이러한 신노사문화는 신뢰속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그 신뢰는 서로가 부딛히는 투쟁, 교섭, 생산, 산업재해의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그 속에서 서로의 요구를 충분히 듣고 수용할 때, 또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할 때 신노사문화는 싹트고 열매 맺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부에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민주노총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는 것이다.

한국노총 편애를 중단하고 민주노총을 편애하라는 말이 아니다. 첫째 2001년 여름 노동부장관이 출입기자들에게 '민주노총파'를 분석하면서 '어디는 배제하고 어디는 밀어준다'는 식의 공작적 인식을 다시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 장기투쟁사업장과 파업사업장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적극 대화하자는 것이다. 눈치보지말고 소신있게 하면 신뢰를 안할 수 없다. 다소 노조에 불리할 때가 있더라도 말이다.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노사정 관계의 재구축을 희망하며

현 시기 신노사문화의 시금석인 노사정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다.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탈퇴가 거론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을 노동부는 깊게 분석해야 한다. 1차적 문제가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 합의를 지키지 않는 정부, 그 정부에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큰 소리내지 못하는 말석의 노동부,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노동부장관인지 경찰청장인지 헷갈리게 하는 모습, 이래서는 안된다. 이러면서 백날 신노사문화를 외치면 무슨 소용인가?
노동부의 소신을 기대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온갖 욕을 감수하면서도 중재의 노력으로 악성사업장을 해결하는데 일조하는 근로감독관들에게 애정을 보낸다.

2001년 12월 23일 인천구치소에서

한석호 금속연맹 조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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