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대상판결 : 대법원 2022. 3. 21. 선고 2020도12560 판결

1. 사건의 개요와 쟁점

한국전력공사는 전남 나주에 본사를 두고 전국에 광역조직을 통해 전기발전·공급업을 영위하는 공기업이다. 한전은 2017년 3월7일 산업단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지장철탑 이설공사를 전기공사업체인 피고인 B회사에 맡겼다. 피고인 C는 한전의 충북지역본부장이고, 피고인 A는 피고인 B회사의 전무다.

B회사는 2017년 11월9일 작업진행을 위해 감전 방지조치가 필요하다고 한전에 요구했고, 이에 한전은 협력업체를 시켜서 감전 방지를 위한 절연방호관 설치작업을 했다. 그러나 피고인들 모두 절연방호관이 제대로 설치됐는지를 검수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B회사 소속 G(57세)가 2017년 11월28일 오후 2시10분께 비계설치 작업을 하던 중 절연방호관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탓에 노출된 충전 부위에서 발생한 방전 전류에 감전돼 14미터 아래 땅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감전쇼크사였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 B회사의 안전조치 의무위반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으나, 피고인 한전도 옛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으로서 안전조치 의무를 지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약 4년반 만에 한전이 도급인으로서 의무를 진다고 판단했다.

2. 법원의 판단

이 사건은 행위 당시 옛 산업안전보건법(시행 2020년 1월26일, 법률 제16272호, 2019년 1월15일 전부 개정되기 전의 법, ‘김용균법’으로 개정되기 이전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다. 1‧2심인 청주지법과 3심인 대법원은 모두 한전이 옛 산업안전보건법 29조1항, 3항상 도급인으로서 책임을 진다고 봤다. 다만 옛 산업안전보건법은 현행법보다 도급인의 형사책임을 매우 제한하고 있었으므로 하나씩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양형이유에서는 한전이 실질적 이익 귀속 주체이고 상당한 자금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도급인의 의무를 방기해 “죄질이 나쁘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노출 충전부의 방호조치의 완결성을 확인하지 못하고 수급업체 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등 종합적인 안전관리를 하지 못했으므로 “한전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봤다. 그럼에도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도급 사업주의 지위 등을 부인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3. 평가

가. 도급인·수급인의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에 관한 해석

첫째로, 도급인과 수급인의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에만 도급인에게 책임이 있다(산업안전보건법 29조1항 본문). 1심은(청주지법 2019. 8. 13. 선고 2018고단1112)은 고용노동부 지침을 근거로, ”같은 장소“란 특정작업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업이 이뤄지는 ‘도급인의 사업장 내’에서 수급인의 작업이 이뤄지는 경우로서, 사업주의 관리감독이 미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시했다. 여기서 ”사업“이란 도급 사업주가 운영하는 ‘본래 사업’뿐만 아니라 ‘본래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당연히 수행돼야 할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사업’을 포함한다고 봤다(2012년 9월 작성 ‘사업의 일부 도급 사업주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 적용 지침’). 참고로 대법원은 옛 산업안전보건법상 “같은 장소”를 규정한 취지는, 도급인이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과 의무가 있는 경우에 책임을 지우기 위한 것이라 보고, 장소적 동일성만으로 충분하고 시간적 동일성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6. 3. 24. 선고 2015도8621 판결). 이를 보면 1심의 판단은 타당하다고 보인다.

또한 1심인 청주지법은 △한전이 산단 조성과 관련해 지장송전선로를 이설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공사를 하게 된 것으로 △한전 직원이 적극적으로 작업지시나 감독권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주요 공정이 있을 때마다 현장을 방문해 시공품질과 시공상태를 확인하고 △B회사의 현장소장도 한전 직원을 ‘감독’이라고 불렀으며 △한전이 B회사의 요청에 따라 방호관 설치도 진행한 사실을 주목했다. 그에 따라 이 사건 공사는 한전의 주요 사업목적인 ‘전기발전공급 및 전력설비건설’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공사라고 여겨서 공사 전반을 관리했으므로, “피고인의 사업장 내로서 그 관리 감독권이 미치는 곳”이라고 판단했다. 근거 제시와 판단에 이르는 논리적 결론까지 전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인 김용균법에서도 이러한 판단이 이어질까? 그렇다고 보인다. 김용균법 10조2항, 63조에서는 “도급인의 사업장”이라는 표현을 아예 명시하고 있다. 이에 관해 노동부는 2020년 3월 도급시 산업재해예방 운영지침에서 구체적으로 해석한다. 옛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별도의 정의규정은 없었으나, 도급인의 사업목적 달성에 본질적이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사업의 생산·제조 등 일련의 과정 중 일부를 분리해 도급을 주는 경우에 도급인의 의무를 부과했다고 하는데 이는 위 2012년 지침의 내용이다(9면). 그런데 김용균법 2조6호에서는 도급의 정의규정이 생겼으므로 위와 같은 구분이 불필요하다. 따라서 “도급인의 사업장”이란 ① 사업목적과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②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본다(생산설비의 정비·유지·보수, 경비·조경·청소 등 용역서비스, 통근버스·구내식당 등 복리후생시설 운영 등도 포함, 이상 2020년 지침 12면).

이 사건에서 한전이 맡긴 이 사건 공사는 현행법인 김용균법에 따르면 ①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므로, 한전은 당연히 도급인으로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나. 전문 분야 공사에서 공사의 전부를 도급 줘야 하는 사업에 해당하는지

둘째로, 이 사건 공사가 “사업이 전문 분야의 공사로 이뤄져 시행되는 경우 각 전문 분야에 대한 공사의 전부를 도급을 줘야 하는 사업”인지가 문제였다(산업안전보건법 29조1항 2호).

1심은 전문 분야 공사의 경우 종합적인 현장 안전관리가 필요하므로 도급인에게 사업의 전문성에 맞는 “총괄적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한 것”이라고 관련 법조항을 해석했다. 그리고 이 사건 공사는 전기공사로서 전문 분야 공사에 해당하므로 한전이 책임을 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2심(청주지법 2020. 8. 21. 선고 2019노1244)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사건 산재사고도 각 전문 분야의 공사업체들 사이에 안전관리에 관한 의사소통과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종합적인 안전관리를 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태에서 발생했다”며 전문 분야 공사에서의 도급인의 역할을 더욱 강조했다. 즉 절연보호관 설치공사에 필요한 전문성, 철탑 설치를 위한 공사에 필요한 전문성은 상호 간 연계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전문공사를 도급 주는 한전이 총괄해 작업을 조정할 필요가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 구체적인 의무위반이 있는지

한전측은 자신이 옛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아서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지정하지 않았고, 절연방호관 설치공사가 제대로 됐는지를 판단할 수도 없고, 피고인 C로서는 충북 내에서도 관할하는 공사가 많으므로 작업현장에 계속 있을 수도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2심은 한전측이 스스로 도급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여러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범죄성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봤다. 자기 행위를 인식하고 있지만, 법률적으로 금지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법률의 부지’는 처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당연한 판시다.

라. 나가며

김용균법에 비해 도급인 책임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옛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됨에도 한전의 도급인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전이 현장 감독을 세세하게 하지 않은 것은 작위의무를 하지 않음을 강조하는 사정이지, 처벌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한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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