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KDB산업은행은 두 정책의 장점만 취한 정책금융기관이다. 국회의 승인 없이 필요한 곳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 그 성패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나오지만 산업은행이 있어서 기간산업을 유지할 수 있고 전략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비대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시대 무슨 영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정치권은 갖고 있다. 그러나 경제는 냉정한 법, 산업은행 노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망한다”고 주장한다. 왜일까. 조윤승(46·사진) 금융노조 KDB산업은행지부 위원장을 지난 18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산업은행, 안 하는 거 빼고 다 하는 곳”

- 산업은행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안 하는 거 빼고 다 한다. 신용보증기금이나 한국자산관리공사 같은 곳은 이름을 들으면 기능을 유추할 수 있지 않나. 그런 기관이 없는 모든 영역을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아주 과거에는 고속도로를 깔았고, 이후에는 중화학공업 체질개선과 육성을 지원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벤처기업을 육성했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외화를 주력해 조달했다. 당시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을 빼면 외화조달이 아예 안 됐다. 산업은행이 나서서 외화를 조달해 기업은 물론 시중은행에도 수혈해 줬다. 요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뉴딜까지 하고 있고, 아마 통일하면 통일사업도 산업은행이 해야 할 것이다. 산업은행이 한 해 운용하는 예산이 260조원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정부가 지출한 예산 160조원 가운데 70조원을 산업은행이 담당했다. 국가경제에서 전방위적 소방수 역할을 하는데 구조조정 같은 문제에서 여론이 좋지 않아 비판도 많이 받는다.”

-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 업무를 설명한다면.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금융지원을 계속 했다. 2020년 2월7일 이후 지난해 말 기준 금융지원 실적은 신규·기간연장 등 8천575건, 지원규모는 37조7천653억원이다. 코로나19 피해기업을 지원하는 온렌딩대출은 2천359건, 1조5천961억원 규모다. 온렌딩은 산업은행이 민간금융기관에 자금을 공급하면 해당 금융기관이 대상기업에 심사로 대출해 주는 제도다. 이뿐만 아니라 회사채를 신속인수하고 차환을 발행하거나, 증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했다. 기간산업안정자금만 40조원 규모다. 비록 기간산업안정자금은 지출에 대한 지적도 있지만 일단 돈을 조성해 놨다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안정적인 시그널을 보내는 효과가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산업은행이 일상적으로 금리를 조정하는 역할도 했다. 시중은행은 대기업이나 관련 계열사에 막대한 돈을 싸게 빌려준다. 그리고 중소기업 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같은 개인여신으로 이익을 낸다. 산업은행은 대기업이나 관련 계열사, 그리고 중소기업 간 금리 차가 거의 없다. 대기업계열에는 시중은행보다 비싼 금리를, 중소기업에는 시중은행보다 싼 금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차후 경제침체를 우려해 산업은행과의 거래관계를 터놓아야 어려울 때 안정적으로 자금을 공급받는다. 그래서 규모가 유지된다. 이런 방식으로 기업규모별 금리격차를 줄이고 재조정할 뿐 아니라 중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 밖에 장래가 유망한 신산업 육성을 위해, 돈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도 투자한다.”

이전하면 자금조달에 차질
‘신디케이션’에서도 고립

- 서울을 벗어나면 관련 업무 진행에 차질이 생기나.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다. 네트워크가 생명인 금융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일단 돈이 나가는 쪽을 살펴보면, 안타깝지만 수도권에 대부분 기업이 몰려 있다. 이들의 실제 필요와 자금운용 안정성, 사업 전망을 수시로 살피지 않으면 자금 관리가 어렵다. 실사를 할 때가 있는데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실사하면 내실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금융 트렌드 중 하나가 ‘신디케이션’이다. 단일 프로젝트가 워낙 커져서 여러 금융기관이 참여해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수익도 나눠 갖는 형태다. 이럴 때 금융기관 간 네트워크가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부산에 동떨어져 있으면 각종 프로젝트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고사하고 만다. 물론 부산에도 기업체가 상당히 있지만, 국책은행이 전국 사업체를 봐야 하지 않나. 관리에 실패하면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온다. 국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손실을 보면 어떻게 메우겠나. 세금에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용납이 될까? 그것도 몇 억원대가 아니라 몇 조원대 자금일 텐데.”

- 건전한 사업관리에 공백이 생긴다는 우려 때문인가.
“더 큰 문제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금융은 네트워크산업이다. 네트워크라는 게 무슨 인맥 자랑하는 그런 게 아니다. 산업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 중 하나가 채권발행이다. 채권을 발행할 때 적정량과 금리, 그리고 매입기관들을 먼저 확인해서 채권을 발행한다. 상상해 보라. 산업은행이 채권을 발행했는데 다 팔리지 않는다? 당장 난리가 날 것이다. 정책자금이 필요한데 조달을 못했다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산업은행은 채권을 발행할 때 매우 신중하고 면밀하게 조사한다. 관련 기관이나 기업들을 미리 찾아가 채권 매입량과 금리 등을 협의한다. 이게 사전협의 수준이지만 사실상의 확약이다. 그래서 눈치를 보고 조사를 하고 교섭을 하는 치열한 과정이 있다. 그런데 이거 구매할 곳들이 다 어디에 있나? 결국 다 서울, 그것도 여의도에 몰려 있다. 바이어가 다 여의도에 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은 공공의 정책지원을 위한 대부분의 재원을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에서 직접 벌어서 쓴다. 산업은행이 서울을 벗어나는 건 수익원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인력 유출까지 일어나면 산업은행의 기능 자체가 무너진다.”

- 핵심인력 유출 우려를 특히 강하게 표명해 왔다.
“산업은행은 조달시장에서 투자은행(IB) 같은 역할을 한다. IB업계는 다른 업계와 달리 특정 팀이나 특정 인력의 역량을 매우 중시하는 시장이다. 대기업 증권사에 있더라도 중소기업 증권사로 옮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럴 때 특히 혼자 가지 않고 몇 명이 팀처럼 같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그만큼 실력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시장이라는 거다. 자금을 끌어올 수 있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 산업은행은 그런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거 채용하고 있는 기관이다. 시중은행 행원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전문성이 매우 필요하고 그만큼 경력과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부산 이전 과정에서 이들 일부가 이탈하면 자금운용에 공백이 불가피하다. 몇 억원 수준이 아니다. 지금 산업은행 기업금융실 1개팀이 1조원 이상을 운용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력이 부족해서 1개팀이라도 3명 내외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바깥의 부산 이전 주장이 커지면서 직원들이 이미 동요하고 있다. 1분기에만 벌써 10명이 퇴사했다. 다 30~40대 직원이다. 시장에서 산업은행 인력들을 엄청 탐낸다. 이탈이 가속화해서 조달이나 운용에 어려움이 확산하고 그 결과 손해를 보게 되면 국회나 정부가 책임질 건가?”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국회에 정책금융 지원 요청하면
산업은행 폐지론 불 지필 것”

- 부산으로 산업은행을 이전하면 제 역할을 못할 것으로 보나.
“물론이다. 망한다. 주요한 정책금융 대상에서 이탈하고 자금조달 시장에서 탈락한다. 돈을 벌지도 못하고 쓰는 것도 제대로 못 쓸 우려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인력을 시장으로 대거 유출하면 수혈도 힘들다. 수조원대의 자금운용 공백이 전망된다. 만약 채권발행에 실패하거나 몇 차례 예산에 적자가 발생하면 당장 정부와 국회에서 산업은행 무용론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공격하면 문 닫을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이 정책금융을 해야 하는데 채권을 못 팔고 시장에서 조달을 못해 국회에 3조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상상해 보라.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산업은행이 그런 과정을 거쳐 없어졌다. 이런 국가경제적인 문제를 고작 산업은행 직원들이 부산 가기 싫어서라고 매도하고 내부 행정작업이 늘어나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말이 되나. 정부관료에게 묻고 싶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와 코로나19 회복에서 정말 산업은행 기능 없이 자신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 국토 균형발전의 당위성도 고민할 대목이지 않나.
“국토 균형발전은 해야 한다. 근데 금융의 국토 균형발전이 고작 수천명 규모의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는 것인가. 지방은 부산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금융의 국토 균형발전은 자본을 지역차별 없이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권역별 지방은행을 잘 육성해서 지역 내 산업에 적시에 자본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역거점산업과 지역자본을 연계하고 만약 지방은행이 없거나 자금이 부족하면 산업은행 같은 곳의 정책금융기관 지원으로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 지방에 돈이 원활히 돌게 하는 게 국토 균형발전이다. 앞서 밝힌 온렌딩 기능이 그런 것이다. 만약 지금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면 어떤 영향이 있겠나. 산업은행도 돈을 벌어서 써야 하고 기업체에 대출도 해 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산업은행 관계자 가운데 부산의 거점산업에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결국 지방은행인 부산은행이 하는 일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되레 부산은행에 타격을 준다. 왜 국책금융기관을 옮겨서 특정지역의 지방은행에 타격을 주는 짓을 하는가.”

-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오 시장이 ‘자해’ 같은 강한 표현까지 쓰면서 말해 준 점은 고맙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직언할 사람이 누가 있나. 서울시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중책을 맡는다. 서울시장 경험을 한 적 있었으니 산업은행의 중요성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꿈도 클 텐데 국정철학을 잘 가다듬는 차원에서 생각해 주길 바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안에도 금융 전문가 많다. 산업은행을 부산에 보낼 때가 아니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나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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