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 중 한 분은 포스팅하는 글마다 오늘이 며칠째인지 날짜를 꼽는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불과 6시간 전 그녀가 올린 페북에는 ‘1,074일째’라는 기록이 담겼다. 2019년 4월 수원시 고색동의 아파트형 공장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김태규님의 어머니 신현숙님이 아들의 죽음 이후, 또 다른 오늘을 살아 내고 있는 방식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인 고 김태규님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지난 18일 오전, 그녀는 307일이라는 날짜도 기록하고 있었다. 그녀는 항소심이 열리기까지 무려 307일이 걸린 또 다른 산재사망 노동자 경동건설 고 정순규님의 사건 재판이 열리는 곳에 참석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유족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부산으로 향하는 SRT열차에 올라타며 날짜를 기록했다. 아마도 그곳에서 자신과 같이 조각난 심장을 부여잡고 울분을 토하는 또 다른 산재사망 피해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이 기댈 수 있도록 자신의 좁은 어깨를 기꺼이 내주고, 온기를 전하기 위해 두 손을 꼭 쥐었을 것이다. 이렇듯 그녀의 하루하루는 조각난 일상을 겨우 추스르게 되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의 하루하루는 아픔만을 되새기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태규’와 ‘태규들’이 더 이상은 일터에서 희생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자크 데리다는 ‘함께 잘 살아감(living-well-together)’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만 생존하는 것’, ‘나만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라는 감각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라는 말이다. 서로 연결돼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놓치 않는 것이 실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신현숙님이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 기꺼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함께 잘 살아감’을 실천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를 우리 일터의 노동재해 문제로 가져와 대입해 보면 어떨까. 일터에서 발생한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일터에서의 죽음을 특정한 누군가의 ‘불운’이라고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그런 감각이 아닐까 한다. 나아가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고,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고 할 때, 왜 누군가는 같이 일하지만 권리에서 배제되고 있는가, 왜 어떤 특정 노동집단은 안전에 더욱 취약하고, 건강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것을 당연시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고, 반문하고, 우리 사회의 빈구석을 촘촘히 채워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총을 필두로 매년 진행되는 노동자들의 4월 실천은 ‘함께 잘 살아감’을 위한 모습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이하며, 매년 4월 말 노동자들은 지난 한해 일터에서 희생당한 동료 노동자들을 함께 추모하고, 그들의 죽음을 되새기며 기억하겠다고 다짐한다. 사업장 담벼락에 현수막을 걸고, 추모리본을 조끼에 단다. 그러나 단지 ‘죽은 자를 위한 추모’에만 그치지 않는다. ‘산자를 위한 투쟁’을 함께 결의한다. 4월이 민주노총의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근래에는 4월 투쟁의 일환으로 그동안 중앙단위에서만 진행하던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전국 각지에서 이어받아 지역차원으로 개최하고 있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고유한 지역사회의 과제들을 제기하며, 지자체·기업·사회를 향한 요구들을 천명하고 있다. 필자가 속해 있는 경기지역에서도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를 포함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와 함께 올해로 4번째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진행해 온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도 미약하나마 기여를 했다. 행사 주최측은 살인기업처벌법 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그 결과 부족하지만  올해 1월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그런데 새 대통령 당선자는 이 법을 우선 손보겠다고 한다. 재계도 정권교체 분위기에 편승해 법 개정 요구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함께 잘 살아감’을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반대편에서는 철저한 기억 지우기와 망각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망각을 요구하고, 강요하는 권력이 지배하는 한 시기에 이제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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