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전략요충지인 우크라이나의 마리우폴을 대부분 점령했다. 나치즘을 신봉하는 극우군사조직인 아조프부대를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군 2천500명은 항복하지 않으면 절멸시키겠다는 러시아군에 맞서 아조프스탈 제철소에서 항전을 계속하고 있다.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 제철소에 대한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던 러시아군은 공격을 일단 멈추고 ‘피난 통로’를 제안하는 등 숨 고르기에 나선 형세다. 민간인 1천명이 아조프스탈 제철소에 “피난”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이 침공하기 전부터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하던 미국과 서방의 군사고문단들은 민간인과 뒤섞이는 시가전을 전술로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이 도시의 민간인 주거 지역에 들어가 민간인을 ‘방패’로 저항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미군 해병대 정보장교 출신으로 유엔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사찰단을 이끌었던 스콧 리터(Scott Ritter)는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의 행태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행태를 비교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쟁이 아니라 왜 ‘특수작전’인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군은 발전소·통신소·방송국 등 모든 것을 쓸어 버렸다. 전기가 끊어졌고 도로망이 박살 났고 통신도 전부 마비됐다. 미군은 군사시설을 넘어 민간인을 위한 사회기반시설까지 모두 파괴했다. 그 과정에서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은 발전소와 통신소 같은 사회기반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있다. 고속도로와 철도와 인터넷망도 멀쩡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인터넷 화상으로 각국 의회에 나타나 연설을 하는데도 러시아군은 가만둔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은 민간인들을 무차별 폭격했으나 러시아군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군이 가진 역량만큼 공세적이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면전이 아니라 제한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오래전부터 예언해 온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인 기원이 2008년 4월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한다. 당시 나토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회원국으로 가입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맞서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결단코 인정할 수 없으며, 이는 러시아의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레드 라인’을 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경고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2021년 1월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 많은 지원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는데, 이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레드 라인을 넘은 것으로 러시아의 생존에 위협을 가한 행위였다. 러시아가 경고를 계속 보냈지만 미국은 무시했고, 그 결과 올해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많은 사람들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해 러시아로 편입시켜 소련의 부활을 원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터무니없는 것이다. 사실 전쟁의 근본 이유는 나토의 확장이며 우크라이나를 방어벽으로 만들려는 서방의 의도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러시아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원인을 미국과 서방의 막대한 무기 지원에서 찾는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과 서방이 제공하는 무기와 정보 때문에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배하고 서방이 제재를 통해 러시아 경제를 교살하는 데 성공한다면 푸틴은 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고 러시아가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느끼면 러시아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소련 붕괴 이후인 1990년대 초부터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계속 보유할 것을 주장했던 미어샤이머는 당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압박을 가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당시 어리석은 결정을 했던 서방이 이제 와서는 나토 가입을 통해 러시아에 맞서라고 우크라이나를 부추기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만신창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쟁 전망을 두고 미어샤이머는 이렇게 분석했다. “지금 러시아도 질 수 없고 우크라이나, 즉 미국과 서방도 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패배는 굴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리전을 치르게 된 우크라이나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워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래서 전쟁은 몇 년을 끌면서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대항하는 서방의 방어벽이 되는 것도 포기하고, 중립국이 되는 것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는 미어샤이머는 “이 경우 러시아가 승자가 되고 우크라이나 국민 다수도 승자가 되지만, 미국과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극우세력은 패자가 되기 때문에 미국과 서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미어샤이머는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야말로 미국의 진정한 위협이라고 본다.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중국을 봉쇄하는(contain) 정책을 미국이 러시아 및 인도와 협력해 실행해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와 싸움으로써 글로벌 경쟁에서 중국을 승자로 만들어 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어샤이머는 미국처럼 러시아도 대국(a great power)이며, 대국은 무자비하고 잔인하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현실주의자(realist)’다. 미어샤이머는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주는 “협상(modus vivendi)”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한다.

윤효원 객원기자 (we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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