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22. 2. 10. 선고 2021구합66906 판결

Ⅰ. 사실관계

고인은 2020년 5월6일 자동차부품제조업 등을 하는 주식회사 한국에프엠(이하 ‘이 사건 회사’)과 ‘제조설비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했고, 계약에 따라 유압설비 수리·개조 업무를 담당했다. 고인은 2020년 7월7일 이 사건 회사 소속 지게차 운전자에게 유압설비를 작업장 밖으로 운반할 것을 요청했는데, 무게중심 불균형으로 유압설비가 고인쪽으로 넘어져 유압설비(약 600킬로그램)에 깔리게 됐다. 고인은 위 사고로 인한 몸통 부위 손상(골반뼈·허리뼈 등의 골절), 척수파열 및 내부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고인은 개인사업자로 사업자등록을 보유한 상태였으며, 4대 보험 취득이력이나 근로소득 신고내역은 존재하지 않는 등 사업주로서의 외관을 갖췄다. 또한 취업규칙 등의 적용을 받지 않았고, 업무를 함에 있어 구체적인 지휘·감독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고인은 이 사건 회사에 매일 출근해 이 사건 회사의 공장 내에서 작업했으며, 제 3자를 고용하거나 대체자가 근무한 사례는 없었고, 고정급으로 보수대행료(월 440만원)를 지급받았다. 또한 계약기간 동안 오로지 이 사건 회사의 설비 유지보수 업무만을 수행했다.

이에 고인의 배우자는 2020년 10월23일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공단은 ‘고인을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지급 결정한다.

Ⅱ. 판결의 내용

이 사건 회사와 고인은 (근로계약이 아닌) ‘제조설비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했으나, 고인은 이 사건 회사 핵심 설비의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한 근로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계약형식이 위탁계약으로 체결됐을 뿐, 고인이 근무한 실질은 여타의 근로자와 더 가깝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① 고인이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한 제조설비는 이 사건 회사의 핵심장비다. 필수불가결한 설비의 안정적 가동을 위해 고인은 정기점검, 고장시 즉각 대응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계약서 2조), 그 결과를 회사에 서면 또는 구두로 보고해야 했다(계약서 4조1항). 회사 상무는 ‘유지 보수 업무는 공장 설비의 가동과 관련되기 때문에 회사의 승인 없이 고인이 임의로 유지보수 할 수는 없다’고 확인한다.

② 회사는 고인에게 회사 인근에서 숙박할 수 있도록 숙소를 제공했다. 고인은 주 5일 오전 7시경 출근해 오후 5시 이후 오후 6시경 퇴근했다. 고인은 개인사업자등록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이 사건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이후 별도의 소득활동은 하지 않았다. 회사 상무는 ‘업무 성격상 고인은 회사에 상주하며 상시 대기해야 했다’고 확인한다.

③ 고인은 매월 15일 고정급으로 440만원(부가세 포함)을 지급받았다. 그리고 고인이 받는 금액은 매월 고인의 작업량에 변동이 있더라도 달라지지 않았다. 고인은 업무량 내지 성과와 관련 없이 고정적으로 일정한 금액을 매월 정해진 날짜에 지급받았고, 업무량 등의 변동이 수익이나 손해로 귀결되지 않았다.

④ 이 사건 사고는 고인이 혼자 업무를 수행하다 발생한 것이 아니라, 회사 직원에게 요청해 지게차로 기계설비를 이동시키던 중에 발생했다. 고인과 함께 근무했던 양○○은 ‘저와 최○○, 고인이 설비 유지 및 보수를 함께 담당했다. 저랑 고인은 회사 직원과 사업자라는 점만 제외하면 모두 같았다’는 취지로 확인한다.

⑤ 고인은 자신이 보유한 기본적인 장비 외에 나머지는 회사 소유의 장비를 사용했고, 회사는 ‘망인이 보유하지 않은 필요 공구는 회사 보유분을 사용하거나 회사에서 제공해 줬다’고 확인한다.

Ⅲ. 검토 및 판결의 의의

1. 산재보험법상 근로자 개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5조(정의)2호는 ‘근로자’ 개념을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산재보험급여의 수급자)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개념과 같다. 그러므로 판례의 근로자성 판단기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대한 판례의 변화

대법원은 1994년 판결(대법원 1994. 12. 9. 선고 94다22859 판결)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일반 원칙과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처음 제시했다. 1994년 판결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계약의 형식이 민법상의 고용계약인지 또는 도급계약인지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사용종속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8가지 요소를 제시하면서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1994년 판결에 대해서는 현실의 다양한 노무공급관계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대법원은 비판을 수용해 이후 근로자성 인정기준에 대해 변화된 설시를 하고 있다. 변화된 최초의 설시는 2006년 대학입시학원 종합반 강사 사건 판결(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에서 나타난다(이하 ‘2006년 판결’). 2006년 판결은 종래의 ‘구체적, 개별적’ 지휘·감독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으로 지휘·감독 여부를 다소 완화했고,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라는 판단기준을 통해 독립사업자성 관련 징표를 보다 강조했다. 여기에 덧붙여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해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해 근로자성 판단기준 중 사용자의 임의적 설정이 가능한 ‘형식적 기준’을 분별했다.

3. 본 판결의 의의

위와 같이 2006년 판결은 1994년 판결에 제기된 학계의 비판을 수용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범위를 종전보다 넓힐 수 있도록 법리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2006년 판결 이후로도 16년이 흘렀다. 그동안 노동자들의 일하는 양상은 큰 변화를 겪었으며, 근로자성이 다춰지는 경계가 희미한 영역들이 대폭 증가했다. 그리고 기존의 법리로는 새로운 일자리나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담아내기에 부족한 경우들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배달앱을 통해 배달요청을 받아 음식물을 배달하는 배달원의 경우 기존의 법리는 근로자성 부정의 주요 근거로 활용됐다(대법원 2018. 4. 26. 선고 2016두49372 판결). 회사와 학습지 회원에 대한 관리·모집·교육을 내용으로 하는 위탁사업계약을 체결한 후 해당 업무를 수행한 학습지교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도 마찬가지로 부정됐다(2018. 6. 15. 선고 2014두12598, 12604 판결). 기존 법리에 따라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상당한 지휘·감독’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의 지정 등’의 요건을 획일적·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경우,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은 종종 부정됐던 것이다.

본 판결에서 법원은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등의 적용을 받으며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등 근로자성 여부를 좌우한다고 봤던 요소들을 핵심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법원이 주목한 것은 망인이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한 설비가 이 사건 회사의 사업에 핵심적인 장비였으며, 이로 인해 망인 또한 사업장에서 사실상 상시 업무를 수행했다는 노동의 실질적인 모습이었다. 이 사건에서 회사의 ‘가시적인 통제’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법원은 망인이 담당한 설비와 업무의 특성상 명시적인 지휘·감독이나 근무시간·장소의 지정이 없었더라도, 회사에 의해 주어진 일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당 노동의 개별적인 특성에 주목해 망인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본 판결은 근로자성 판단에 있어 인적 종속성, 경제적 종속성을 판단하는 기존의 징표들을 고수하기보다 실제로 이뤄진 노동의 특성에 주목하고 나머지 기준들은 적용하지 않거나 부수적으로 적용했다.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소위 사장님으로 위장하는 경우, 다른 위장형태보다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계약의 형식이나 개인사업자 등록과 관계없이 타인의 통제하에 일을 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다. 위장된 사업자를 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로 돌려놓는데 본 판결은 작은 보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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