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사라바난 말레이시아 인간자원부 장관이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본부를 직접 방문해 ‘1930년 강제노동 협약에 관한 2014년 의정서(the Protocol of 2014 to the Forced Labour Conventions, 1930)’의 비준서를 기탁했다. 2014년 ILO 연차총회인 국제노동대회는 1930년 채택된 29호 강제노동 협약을 보충하는 의정서를 노사정 3자 합의로 채택한 바 있다.

협약의 효력과 동일하게, 해당 협약을 보충하는 내용을 담은 의정서 역시 법률적 구속력을 갖는 ILO 기준이다. 해당 협약을 채택한 회원국에 한해 그 협약에 관련된 의정서를 비준할 의무가 부여된다. 협약 비준처럼 의정서를 비준한 회원국은 의정서의 조항들을 법률적 강제력을 지닌 기준으로 인정하고, 이를 실행하겠다는 약속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나아가 ILO의 감독체제를 받아들일 의무를 지게 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인 1957년 29호 강제노동 협약을 비준했다.

말레이시아에서 강제노동 문제는 주로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돼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자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정확한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현재 내국인의 전체 노동력 규모는 1천630만명 정도다. 동남아 연구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쌓아 온 싱가포르의 유소프이샤크연구소(ISEAS)는 2018년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를 최저 385만명에서 최대 550만명으로 추정한다. 말레이시아 전체 노동력의 20~30% 이상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원칙적으로 말레이시아에서 고용법과 노동조합법 등 노동법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지만, 실제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최근 들어 말레이시아의 노동조합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물론 내국인 노동자들도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노동법개혁연합(LLRC)’을 결성하고 노동법 개정과 노동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라바난 장관은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에게 비준서를 전달하면서 의정서 비준을 “강제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말레이시아 정부의 약속”이라 평가하면서 “인권 침해인 강제노동은 절대 용납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그는 노동집약 산업의 상당 부분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국민경제 상황을 언급하면서 “(의정서 비준이) 사회정의를 전진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증진하기 위한 길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기대했다.

29호 강제노동 협약은 회원국이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철폐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강제노동을 범죄로 간주해 처벌하고 강제노동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구제하는 국가의 의무를 포함한다. 29호 강제노동 협약에 관한 의정서 1조에 따르면, 강제노동을 효과적으로 철폐하기 위하여 ILO 회원국은 강제노동의 사용을 예방하고, 강제노동을 철폐하며, 그 피해자에게 보상 등 적절하고 효과적인 구제수단을 제공하고, 강제노동의 가해자에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 또한 노사단체 및 관련 단체와 협력해 강제노동의 실질적 철폐를 위한 정부 정책과 행동 계획을 만들고, 주무 관청을 통해 체계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의정서 1조는 철폐해야 할 강제노동의 범위에 강제노동을 목적으로 하는 인신매매를 포함시키고 있다.

의정서 2조는 강제노동을 막기 위한 조치로 취약계층에 대한 교육과 홍보, 사용자에 대한 교육과 홍보, 관련 법규의 전면 확대 적용, 근로감독 활동의 강화, 강제노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실사(due diligence)에 대한 정부 지원, 강제노동의 근본 원인 제거 등을 명시하면서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강제노동의 피해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강조한다.

의정서 3조와 4조는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피해자의 법적 지위에 상관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회원국 정부가 강제노동의 직접적인 결과로 강제로 이뤄진 불법 행위에 연루된 강제노동 피해자를 기소 혹은 처벌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정서의 토대가 되는 ILO 29호 강제노동 협약은 1930년 채택된 것으로 여기서 말하는 강제노동은 식민지 노예노동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쟁점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가 29호가 말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한다. 거의 100년 전에 만들어진 29호 협약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됐고, 이러한 요구에 따라 2014년 국제노동대회에서 ‘1930년 강제노동 협약에 관한 2014년 의정서’가 채택됐다. 따라서 강제노동 협약에 관한 2014년 의정서는 29호 협약과 더불어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ILO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대한민국 정부는 29호 강제노동 협약을 비준한다는 기탁서를 ILO에 제출했다. 그로부터 1년이 되는 20일 협약 29호는 대한민국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187개 회원국 중에서 179번째로 29호 협약을 비준한 나라가 됐다. 강제노동과 관련해 ILO가 회원국에 비준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은 협약 29호와 105호, 그리고 강제노동 협약 2014년 의정서 등 모두 3개다. 말레이시아의 2014년 의정서 비준은 협약 29호가 20일 효력을 발휘하면서 한국의 강제노동 문제가 일단락되는 게 아니라 105호와 2014년 의정서를 비준하기 위한 새로운 여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윤효원 객원기자 (we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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