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교현 평등노동자회 공동대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출근길 지하철에 등장했다. 인파로 가득 찬 지하철에 등장한 그들은 그 자체로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텐데. 그들은 그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피켓 들고 구호를 외치고 지하철을 연착시키기도 했다. 이를 두고 비난이 증폭되다 결국 예비 여당 이준석 대표까지 가세했다. 그는 장애인들의 지하철 타기를 ‘반문명적 행위’로 규정하고, 시민 불편을 내세워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노동자의 노동 3권 중 핵심은 단체행동권, 즉 파업할 수 있는 권리다. 노동자가 파업하면 회사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소위 ‘시민 불편’이 초래될 수 있다. 지하철 노동자가 파업하면 출근길 시민들이, 배달노동자가 파업하면 소비자가, 학교 급식노동자가 파업하면 학생·학부모들이 ‘불편’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단체행동권은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법에는 파업한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불이익처분 금지와 민·형사상 면책조항도 있다. 노동자 파업으로 ‘불편’이 초래되더라도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큰 이익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서구의 여러 국가들은 한국보다 강력한 노동조합이 있고, 오랜 세월에 걸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 결과 시민 삶이 개선돼 왔다.

노동자에게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장애인에게 보장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자기 사업장 내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 파업도 보장하는 마당에, 이동권·교육권·탈시설 권리와 같은 전체 장애인의 요구를 제기하는 장애인에게 단체행동권을 보장해야 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사용자와의 대화로는 자기 권리를 실현할 수 없는 노동자에게 합법적으로 파업할 권리가 있다면, 수십 년 차별을 당해 온 장애인이, 모든 합법적 경로로 호소했는데도 권리를 실현할 수 없었던 장애인에게 단체행동 권리는 주어져야 마땅하다.

지하철 타기는 바로 장애인의 파업이다. 노동자는 파업으로 부당한 생산 현장을 멈추고 사회가 노동자의 요구를 듣도록 만든다. 장애인의 지하철 타기는 출근길을 멈췄다. 출근길은 이동할 수 없어 교육에서 배제되고 일할 수 없는 장애인이 부재한 현장, 즉 차별이 집약해 드러나는 현장이다. 장애인들은 그 부당한 현장을 멈추고 사회가 장애인의 요구에 주목하도록 만든 것이다.

덧붙여 이번 지하철 타기 투쟁에 노동운동이 지지하고 연대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시민을 볼모로 한 반문명적 행위”라는 이준석 대표의 선동은 바로 파업하는 노동자를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파업을 비난하는 언론이 생산 차질·시민 불편을 강조하며 파업의 원인은 말하지 않듯, 이준석 대표도 출근길 지연을 부각시키며 장애인의 비참한 현실과 수십 년 계속돼 온 장애인들의 절규는 가려 버렸다. 갈등을 조율해야 할 정치의 역할은 던져 놓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혐오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투쟁하는 장애인에 대한 비난은 투쟁하는 노동자에 대한 비난이다. 장애인을 비롯한 시민에게 단체행동권이 확장될 수 있을 때, 노동자의 단체행동권도 온전히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기본권과 단체행동권 보장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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