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과 세계

“저야 빨리 내려가고 싶지만 그게 언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돼야만 내려갈 수 있습니다. 살 생각을 하고 올라오지는 않았습니다.”

고공농성을 하는 명재형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동원분회장(56·사진)의 말은 단호했다. 그는 지난해 6월6일부터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 망루에서 택시발전법의 전국 시행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망루는 약 20여미터 높이다. 2019년, 김재주 전 택시지부 전북지회장이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510일’을 하면서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던 우리 사회는 다시 택시노동자를 하늘 감옥으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명 분회장은 지난 1일 고공농성 300일을 맞았다.

<매일노동뉴스>는 3일 망루 위 명 분회장과 전화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30년 전에도 외쳤던 택시월급제

명 분회장은 1996년 8월 부산에서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첫 직장은 성도운수였다. 당시에는 택시 일을 하며 “돈벌이가 제법 쏠쏠했다”고 한다. 고정급은 월 33만원이었지만 손님이 많아 합승 수당을 합하면 월 수입이 300만원에 달했다. 직장생활인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손님이 넘쳐 났다.

성도운수는 당시 노조가 조직돼 있어서 기사들을 위한 목욕탕·헬스장·강당이 있을 정도로 복지가 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노조에 호의적인 마음을 품었다고 한다. 직장 선배의 권유로 1997년부터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호시절이었지만 ‘택시월급제’는 그 당시 구호이기도 했다. 공공교통·대중교통인 택시의 무한경쟁을 방지해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뿐 아니라, 기사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월급제가 필요하다고 봤다.

노조활동은 녹록지 않았다. 조직부장·쟁의부장, 대의원을 거친 명 분회장은 2002년 해고됐다. 3년의 복직투쟁 끝에 2005년 12월에 직장에 돌아갔지만, 회사는 장애인 고용사업장으로 바뀌어 비장애인은 일할 수 없는 곳이 됐다. 현장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움직이는 만큼 돈이 되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자가용이 보편화하며 택시 고객은 대폭 줄었다. 명 분회장은 “마이카 시대가 오면서 고객은 줄고 택시 숫자는 대폭 늘어 영업이 될 리가 없었다”며 “수많은 택시기사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무한경쟁을 시작했고, 불법영업·과로·과속 등 사고율도 늘었고 노동시간도 무한정으로 길어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방황은 계속됐다. 3년 만에 복직한 회사를 6개월 만에 그만뒀다. 노조는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됐고 실망한 명 분회장은 노조도 탈퇴했다. 그 뒤로 돈 되는 일은 다 했다. 부산쪽 택시회사에는 노조 경력이 소문나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 명 분회장 말마따나 “민주노총 노조에 있었다는 게, 해고자 출신이었다는 게 전과”가 됐다. 6년이 넘는 방황 끝에 2013년 동원택시에 입사했다.

“택시현장 과거와 천지차이, 열악함은 더해져”

자리를 잡아 가던 명 분회장은 2019년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를 알게됐다. 25년 전 외쳤던 택시월급제를 여전히 외치고 있었다. 김재주 전 전북지회장이 510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고 2019년 1월에 내려오며 2019년 8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과 택시발전법이 개정돼 희망이 생기는 듯했다. 여객운수법이 개정되며 사납금은 불법으로 규정돼 월급제 형식의 전액관리제가 시행됐다. 택시발전법을 통해 택시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정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생겼다. 그런데 개정된 택시발전법은 지난해 1월부터 서울에서만 시행됐을 뿐 나머지 지역은 대통령령으로 시행일을 정하기로 해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국회가 입법권을 행정부에 떠넘긴 동안 지역 택시사업주들은 그런 입법부작위 상태를 십분 활용했다. 불법이 된 사납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근로시간을 줄였다. 사납금은 기준금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되살아났고, 근로시간을 줄이려는 갖가지 방법이 동원됐다. 택시지부는 지역의 택시노동자들은 하루 2.5~3.5시간을 일하고 월급 60만~90만원을 받아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택시발전법 시행일이 미뤄지며 지역 택시노동자들의 수입이 급감한 것이다. 명 분회장은 “택시 현장은 과거와는 천지차이인데 열악함은 더해져만 간다”며 “2019년 국토부 조사로 월급제 전국 시행이 문제가 없다는 게 이미 밝혀졌다”고 말했다.

2019년 국토부는 운행정보시스템(2018년 12월 기준)을 통해 지역별 월급제 시행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에 따르면 법인택시의 1명당 월평균 수입금은 대구가 352만원으로 가장 적었고, 인천이 559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유지비용 150만~180만원을 제외하면 대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당시 기준 최저임금 이상의 기본급을 줄 수 있다는 결론이 났다. 주 40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한 택시월급제 시행이 가능하다는 연구다.

명 분회장은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는 택시산업 노동자들을 보호할 ‘골든타임’이 지금이라고 강조한다. 명 분회장은 “노동자들의 삶을 지켜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3년 가까이를 앓고 택시노동자들의 목숨이 위태위태한 상황”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택시발전법, 죽어 가는 택시노동자를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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