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22. 1. 28. 선고 2018가단5189423, 2020가단5202923(병합) 손해배상(산)

1. 사실관계 및 이 사건의 쟁점

망인은 1996년 우정사업본부 충청지방우정청 산하 아산우체국 소속 별정우체국인 아산신창우체국 집배원으로 임용됐다. 우정사업본부는 2004년경 ‘집배권역 광역화 추진계획’의 일환으로 충남 아산 지역 집배업무를 총괄국인 아산우체국으로 통합했다. 지역 내 각 별정우체국 소속 집배원들(이하 ‘별정직 집배원’)은 모두 아산우체국으로 파견근무 발령을 받았다. 망인 역시 2004년 8월2일자로 아산우체국으로 파견 명령을 받아 그 무렵부터 줄곧 아산우체국에서 일했다. 망인은 만성적인 업무상 과로, 열악한 작업환경, 높은 작업 강도로 인해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2017년 4월25일 급성 심장사로 숨졌다. 이 사건의 쟁점은 첫째 망인의 사용자가 누구인지(우정사업을 운영하는 대한민국인지 근로계약을 체결한 별정우체국장인지), 둘째 망인의 과로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피고 대한민국이 망인의 사용자인지 여부

원고들은 망인의 유족들이다. 원고들은 대한민국이 망인의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주위적으로 대한민국의 책임을, 예비적으로 대한민국과 별정우체국장(당시 아산신창우체국장)의 공동책임을 주장했다. 피고 대한민국은 망인과의 근로계약이 부존재함을, 피고 별정우체국장은 자신이 망인을 관리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책임을 부인했다.

대상판결은 고용 또는 근로관계를 계약의 형식보다 그 실질로 판단한다는 일반론을 언급하면서(대법원 2019. 4. 23. 선고 2016다277538 판결 등 참고), ① 아산우체국에서 우정직 집배원(공무원)과 별정직 집배원(비공무원)이 구분 없이 동일한 장소에서 혼재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 점 ② 망인 소속이 별정우체국이지만, 실제로 총괄국인 아산우체국에서 근무했고, 아산우체국 물류과장 등의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받은 점 ③ 관할 지방우정청장 내지 총괄우체국장이 별정직 집배원에 대한 채용·승진·전보 등 인사권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는 점 ④ 별정우체국은 ‘집배권역 광역화 추진 계획’ 이후 집배업무 관련 물적 시설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고, 주로 우편접수 및 금융창구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었던 점을 이유로, 피고 대한민국이 망인의 실질적 사용자임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나. 망인의 과로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인정

대상판결은 사용자가 고용 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 부수적 의무로서의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에 관한 일반론을 언급하면서(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60247판결 등 참조) ① 망인의 사망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2시간48분이었으며 망인은 실제 오전 6시 무렵 출근해 오후 8시 넘어 퇴근했고 휴게시간은 점심시간 45분 정도에 불과한 점 ②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분류업무를 하느라 망인은 상시 근골격계 질환을 앓아 온 점 ③ 망인은 2015년 9월 근무환경과 집배원 결원문제 등의 어려움을 상급자에게 호소했는데, 그 과정에서 상급자와 말다툼을 했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고 되레 새로운 집배구역으로 배치돼 업무 부담이 가중된 점 ④ 망인이 일한 아산우체국의 노동시간은 전국 상위 5% 이내이고, 충청지방우체국에서 가장 많았던 점 ⑤ 집배원 1명이 병가 또는 연가를 사용하면 나머지 집배원들이 그 업무를 나눠서 해야 하는데(이른바 ‘겸배’) 이에 대한 적절한 인원 보충이 이뤄지지 않은 점 ⑥ 피고는 망인 사망 전부터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했다고 주장하나 그 교육이 실제로 형식적으로 이뤄진 점 ⑦ 망인 사망 직전인 2017년 2월6일 같은 우체국 소속 집배원이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사망했던 점을 강조했다. 이를 이유로 피고 대한민국은 망인이 업무수행을 하던 중에 재해를 입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보호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상판결은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을 인정해 예비적 피고인 별정우체국장의 책임에 대해서는 별도로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기각했다(민사소송법 70조2항)

3. 대상판결의 의의

별정직 집배원은 과학기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 소속인 우정직 집배원(공무원)들과 함께 일하며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별정우체국 소속으로 공무수탁사인인 별정우체국장과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그 사용자가 정확히 누구인지가 오랫동안 문제돼 왔다. 대상판결은 별정직 집배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는 대한민국임을 최초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원고들은 그 책임의 근거로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구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6조3항에 따른 고용 간주’임을 주장했으나, 대상판결은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판단 기준을 참고한 듯한 사실인정을 했고, 별정우체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관계를 근로자 파견으로 봤으나, ‘실질적 사용자’론에 관한 법리 설시와 함께 피고 대한민국이 실질적 사용자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근로계약의 실질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일면 긍정적이다. 다만 이 사건은 원·피고 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는 다툼이 없고, 사용자가 누구인지가 핵심 쟁점이었으므로 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법리적 판단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아마도 대상판결은 총괄우체국장과 위탁계약 형태로 계약을 체결해 그 계약의 성질이 근로계약인지 위임계약인지가 문제됐던 재택위탁집배원 사건에서 ‘피고 대한민국 산하 우정사업본부 소속의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많이 고려한 듯하고 위 판결의 논거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2019. 4. 23. 선고 2016다277538 판결). 이렇듯 우정사업본부는 그동안 인력부족을 변칙적인 고용형태로 해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위 쟁점에 대한 피고 대한민국의 항소로 현재 2심 계류 중에 있다. 모범적인 사용자가 돼야 할 정부가 우정사업에서 이러한 변칙적인 고용형태를 다양하게 창출하고, 나아가 소속 근로자들과 법적 다툼을 계속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유족급여를 지급받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망인이 단체협약 등을 근거로 매년 호봉승급이 예정돼 일실수입 및 일실퇴직금이 비교적 높게 인정됐다. 만일 산업재해가 인정됐는데 사용자의 보호의무 위반이 비교적 분명하고 더 나아가 호봉승급이 예정된 경우라면, 민사소송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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