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꽃 피는 계절이라지만 지금 활짝 핀 것들은 다 온실 속에서 키운 것일 테다. 서울 청계천 전태일동상 뒤편 산책길에 산수유나무 정도가 수줍게 노랗더라. 가끔 볕 좋은 곳이면 성질 급한 개나리가 펑펑 꽃망울을 틔우기도 했던데, 드물다. 시청 앞이며 어느 광장 둘레 화분에 잘 가꾼 꽃들도 사람 손을 탄 것이다. 실은 보도블록 틈에 뿌리내린 이름 모를 잡초만이 초록 잎 삐죽삐죽 내밀 때다. 지금 예쁜 꽃들은 노랗고 까만 비닐봉지에 있다. 할매는 사람 북적여 활기찬 동대문 꽃시장에 들러 노란 꽃 화분 하나 사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이런저런 요구 새긴 알록달록 팻말 든 사람들이 그 앞을 행진해 지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향해 간다. 봄이라고, 여기저기서 새로운 싸움을 선포한 사람들 발걸음 바쁠 때다. 그 내용이야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묵은 것들이었으니 다만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했을 테다. 긴 겨울 질기게 버텨 이제 막 고개 내민다. 그래도 봄이라고, 얇게 입고 나선 사람들이 추위에 떤다. 으슬으슬 몸살인지, 여기저기 몸이 쑤신 사람들이 코로나 걱정에 콧구멍을 쑤시고 또 쑤신다. 확진돼 집에서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 열이 높다. 목소리 갈라진다. 잘 먹이느라 밥 짓던 엄마 아빠 체중이 늘어간다. 문득 꽃 화분을 들여야지 싶어 찾은 동네 꽃집에 과연 봄냄새 짙다. 길가 나뭇가지가 아직 앙상하다. 환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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