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2022. 2. 10. 선고 2020고단809 판결

1. 사안의 개요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스물넷 하청노동자 김용균이 홀로 컨베이어벨트 점검 중 사망했다. 검찰은 2020년 8월3일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를 포함한 원청 임직원 9명과 한국발전기술 대표이사를 포함해 하청 임직원 5명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를 비롯한 원청 임직원 3명과 법인, 한국발전기술 대표이사 등 하청 임직원 2명과 법인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법원은 원청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위반 치사죄에 대해 무죄를, 위험기계방호조치의무 위반 및 작업중지 등 위반에 대해서는 일부 유죄를 선고했고, 대표이사를 제외한 원청 피고인들 전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인정했다. 하청 임직원에 대해서는 적용된 모든 혐의가 인정됐다. 이들에게는 최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의 징역·금고형의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2. 판결의 주요 내용

대상판결에서 법원의 주요 인정사실과 판단은 다음과 같다.

◇사고경위 및 사망원인=피해자는 발견 당시 상황과 환경, 현장운전원들의 통상적인 작업자세 및 방식, 사고 현장과 설비의 위험성, 부검감정서상 사인 등을 고려할 때 2018년 12월10일 22시41분께 내지 23시께 컨베이어벨트 및 아이들러 점검 또는 탄 처리작업 등을 하는 과정에서 벨트와 아이들러 사이의 물림점에 협착되는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피고인들의 주장과 달리, 피해자가 설비 점검을 위해 신체의 일부를 외함 내부로 집어넣은 것이 통상적인 점검방식을 현저히 벗어난 비정상적인 일탈행위라고 볼 수 없다.

◇작업현장 및 업무의 위험성=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에서는 1년 평균 9명 이상의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사망 등의 피해를 입고 있고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의 근로자였다. 과거 수차례 컨베이어벨트 등에서 동종·유사한 협착 사고가 발생했고 이 사건과 동일하게 근로자의 단독 작업, 회전축 방호조치 위반 등이 재해발생 원인으로 지적·보고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발전기술 산하 사업소에서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5개월 전에 2회에 걸쳐 협착사고가 발생하는 등 유사한 사고가 매우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원청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책임=구 산업안전보건법 66조의2, 23조1항 위반죄는 사업주가 소속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안전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실질적인 고용관계 유무는 고용계약이나 도급계약 등 근로계약의 형식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나, 근로의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실질적인 고용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대법원 2006. 4. 26. 선고 2005도3700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발전기술의 조직 및 관리 현황, 발전기술 업무의 독자성과 전문성, 원·하청 업무의 비혼재성, 원청 업무지시의 일상성 및 구속성 부재, 용역계약상 제한적이지만 근로자 작업배치권·인사권 등을 발전기술이 행사한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할 때, 서부발전과 발전기술 소속 운전원들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 그렇다면 서부발전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사업주로 볼 수 없고 이를 전제로 한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점은 인정하기 어렵다.

◇안전조치의무위반 등=이 사건에서는 ① 덮개 등 방호장치 없이 작업하도록 지시 또는 방치 ② 기계의 운전을 시작할 때 위험방지를 위해 필요한 2인1조 근무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독작업하도록 지시 또는 방치 ③ 가동을 중지하지 않고 작업하도록 지시 또는 방치 ④ 풀코드 스위치의 기능을 유효한 상태로 유지하지 않은 채 작업하도록 지시 또는 방치 ⑤ 이 사건 컨베이어벨트가 위치한 통로의 조도를 유지하지 않은 채 작업하도록 지시 또는 방치한 각 안전조치의무 위반과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된다.

다만 CV-09E 벨트에 설치된 풀코드 스위치 상당수가 불량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점검구에 위치한 풀코드 스위치가 불량이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통로공간의 형태와 조명의 위치, 점검구의 개수와 구조, 점검구 내부 벨트와 아이들러의 위치 등에 비춰 통로 조도와 무관하게 점검구 안쪽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손전등이나 헤드랜턴 등 별도의 조명장비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므로 위 ④와 ⑤의 의무위반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

◇원청의 업무상과실치사죄 성립 여부=서부발전은 이 사건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발전소 내부에 있는 설비의 소유자로서 설비에 관한 주요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설비운전 및 운전원들의 작업에 관해 구체적·직접적 업무지시를 하고 감독을 했으므로, 그에 상응해 운전원들의 안전을 보호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러나 서부발전의 대표이사는 업무보고 등을 통해 설비의 위험성에 대한 일반적 주의의무를 가졌다고 볼 수 있을 뿐, 지휘계통을 통해 위험성을 관리감독하는 일반적·추상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직접적인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3. 검토 - 원청의 사업주 책임에 관해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원청인 서부발전이 ① ABC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해 9·10호기를 구성하는 모든 설비의 소유자로서 설비에 대한 운전·정비·보수·개선 등에 관한 권한을 바탕으로 설비에 대한 운영 전반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는 점 ② 기능적·유기적으로 연결된 작업공정의 전체를 관장하면서 하청인 발전기술이 근로자를 작업에 투입하는 시기 및 작업에 투입되는 인원, 이들의 근로시간과 형태의 변경, 설비 운전방법 등에 관해 직접 관여한 점 ③ 매일 아침 작업 전 진행되는 안전회의를 통해 직접 발전기술의 운영실장·연료운영팀장 등을 통해 발전기술 소속의 근로자들에게 작업 내용 및 작업시 주의사항 등 지시사항을 직접 전달하거나 작업요청 시스템을 통해 작업을 지시하거나, 구두·전화·문자메시지·카카오톡 메시지 및 사진 전송 등을 통해 개별 작업에 관해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등 작업을 지시하면서 발전기술의 설비 운전 관련 업무를 직접적·구체적으로 관리·감독한 점 등을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실질적 고용관계’에 관한 대법원 판결 법리를 제시하며, 이 사건에서 서부발전과 피해자를 비롯한 하청업체 소속 운전원들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기에 원청을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라고 볼 수 없고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책임도 지울 수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실질적 고용관계’에 관한 위 법리는 사실상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성 법리(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와 매우 유사하다. 게다가 이 사건 법원은 각 사실관계를 포섭한 기준으로 근로자 파견 여부에 관한 법리(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의 각 요소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면서 다른 근로관계에 관한 여러 소송(소위 특수고용 근로자의 근로자성 문제, 근로자 파견에 관한 문제)에서 판단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는 사업주를 특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여부는, 결국 누가 사업장 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 내지 능력이 있는가의 문제로 봐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의무는 일차적으로 사업장을 직접 운영·관리(또는 지배·관리, 관리·통제)하는 자, 전체 작업의 진행과정을 총괄·조율할 수 있는 자, 작업환경을 결정할 수 있는 자에게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각주1> 이 사건은 구 산업안전보건법(2019. 1. 15. 법률 제1627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이 적용된 사건인데, 구법은 현행법과 달리 ‘사업주’의 조치의무 위반 사망에 대한 벌칙 조항만 존재한다. 계약의 형식과 무관하게 사업장을 직접 관리·통제하는 자에게 원칙적으로 사업주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위험요인별로 필요한 구체적인 조치를 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대해 권한이나 능력이 없는 하청업체가 일정한 조치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동법상 의무위반으로 인한 사망에 대한 형사상 책임을 누구도 지지 않게 되는 법 체계의 공백이 존재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물론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에게도 명시적으로 조치의무 위반 사망에 대한 벌칙 조항(167조1항, 63조)을 두고 있기에, 현행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사망에 대해서는 ‘도급인’으로서의 책임의 문제로 구성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과 달리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는 여전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사용해 사업을 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어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의 노무제공자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의 정도가 전혀 없거나 제한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사업주에게 산재예방에 필요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문제에 관해, 사업주와 그 보호대상 사이의 ‘실질적 고용관계’ 존부에 대한 해석은 지금도 중요하다. 대상판결과 같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로서의 책임에 대한 소극적 해석이 유지된다면, 사업장 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권한·능력이 있는 사업주의 책임의 공백은 계속해서 발생할 우려가 크다.

<각주>
1) 박다혜, 「근로자가 타인의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의 존부 및 범위」, 『2020 노동판례비평』 25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2021 참조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