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헝가리, 북쪽은 슬로바키아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차로 북쪽으로 달리면 조용한 동유럽 시골 마을이 이어진다. 1시간쯤 달리면 비셰그라드 성이다. 13세기 몽골 침공에 대비해 절벽 위에 지은 요새다. 이후 헝가리 국왕 마차시 1세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인구 2천명도 안 되는 시골이다. 성곽에 올라서면 발아래 조용히 흐르는 도나우강 너머로 슬로바키아의 푸른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

다시 강을 따라 서쪽으로 30분쯤 달리면 에스테르곰이란 좀 더 큰 도시가 나온다. 에스테르곰은 대성당밖에 볼 게 없다. 도나우강가에 지은 대성당은 어마무시하게 크다. 에스테르곰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슬로바키아 슈투로보다. 마리아 발레리아 다리는 1944년 2차 대전 때 독일군이 파괴했는데 2001년에야 복구했다. 슈투로보는 군사요충지라 마을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16세기엔 오스만 제국에 편입됐다가 17세기엔 폴란드 지배를 받았다. 1차 대전 직후 체코슬로바키아에 편입됐다가 1938년 히틀러의 중재로 헝가리에 편입됐고, 2차 대전 뒤 체코슬로바키아 땅이 됐다. 동유럽 해체 이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돼 지금은 슬로바키아의 국경도시다.

헝가리 에스테르곰에서 슬로바키아 슈투로보로 넘어가는 다리엔 국경 검문초소가 있지만 텅 비어 있어 누구나 차를 타거나 걸어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다. 슈투로보 물가가 더 싸기에 에스테르곰 주민들이 주말이면 장을 보러 많이들 국경을 넘어갔다 온다. 2016년 어느 여름날 일몰을 슈투로보에서 봤다. 도나우강 위로 지는 해를 보면서 걷다 보니 작은 공원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버스킹하는 젊은 음악가를 보려고 200여 마을 주민들이 공원 잔디밭에 앉았다. 온 마을 주민이 다 모여 여름밤을 보내는 여유로운 대열에 우리 가족도 한 판에 3천원 하는 피자와 맥주를 시켜 함께했다. 주민들은 이방인의 출현에도 따뜻한 웃음으로 자리를 권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6년이 지난 오늘 러시아의 공습을 피해 피란길에 오른 우크라이나 열한 살 소년이 혼자서 기차와 도보로 1천200킬로미터를 이동해 슬로바키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돌보느라 피란도 포기한 어머니는 아들 손에 여권하고 슬로바키아에 사는 친척 주소와 연락처를 쥐어준 채 홀로 피란길로 내보냈다. 소년의 어머니는 러시아군의 포격이 심해지자 아들과 함께 슬로바키아 친척 집으로 피신하려 했으나, 거동이 불편한 자신의 어머니를 돌봐야 해 아들만 홀로 보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소년이 슬로바키아 정부의 도움으로 친척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한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에 피란민이 몰려들고 있다. 나토와 반(反)나토의 갈등 속에 벌써 피란민이 215만명을 넘어섰다. 폴란드와 슬로바키아로 가장 많은 피란민이 몰려든다. 비록 민족은 서로 다르지만 수천년을 같은 토질의 땅에서 나는 같은 음식을 먹고 비슷한 문화를 공유해 온 동유럽 시민들에게 국경은 별 의미가 없다.

지금 벌어지는 이 전쟁이 과연 누굴 위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열한 살 소년의 평화로운 주말을 앗아 갔을까.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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