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현우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

청년유니온은 지난 16일 총회와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형식적으로는 본부와 과반이 넘는 지부의 선거 무산에 따른 것이다. 진짜 이유는 그간의 성과와 한계, 운동 노선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새로운 비전 수립과 조직개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지난 12년 청년유니온이 변화한 사회 상황 속에서 어떻게 움직여 왔고, 어떤 성과와 한계의 노정을 거쳤는지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수많은 조직 중 하나의 이야기나 청년세대에게만 유효한 이야기가 아니다. 향후 ‘사회적 노동조합’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 노동조합 조직률이 최저점(9.8%)을 찍은 2010년, 청년유니온이 출범했다. 청년유니온은 비정규 및 아르바이트 노동, 구직 및 실업 등 사회와 운동 내에서 주변화한 노동의 문제를 ‘청년’의 문제로 호명하면서 노동의 중심부 의제로 만들어 왔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조합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이 시작이었다. 청년세대를 통해 경험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와 입법 미비, 위법으로 인한 노동 사각지대, 정책적 공백 상태에 놓여 있는 니트와 구직자의 문제, 낮은 최저임금의 문제를 기업별 노조 체제의 울타리를 넘어 대응했다.

‘청년’ 문제로 사회와 정치에 호소했지만 실상은 특정 세대를 통해 경험되는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 불평등과 정책의 사각지대를 ‘청년 문제’라는 외피를 둘러 대응했던 것이다. 청년유니온을 성장시키고, 운동을 만들어 온 활동가와 조합원들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노동과 사회 불평등 문제가 ‘청년’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특정 계층의 상황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남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기성세대와 달리 사회 진입 시기에 정책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청년’세대에 대한 이해 대변이 기존 정치와 운동 내에서 이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청년’ 문제로 호소하는 메시지와 전략은 유효했다.

2022년. 12년 전과 다르게 상황이 변했다. ‘청년’의 이름으로 이해 대변을 자임하는 단체와 주체들이 양적으로 증가했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 지자체들에 청년기본조례가 제정되고, 중앙정부 차원의 청년정책 추진 근거가 되는 청년기본법 입법까지 이뤄졌다. 사회 진입 시기에 놓일 수 있는 노동시장에서의 취약성에 주목해 지원하는 각종 정책들이 확대됐다. 기존 고용보험으로 지원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구직자·실업자·니트 청년들을 위해 도입됐던 ‘서울시 청년수당’은 한국 최초의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로 확대됐다. ‘최저임금은 청년 임금’이라는 구호 아래 이뤄졌던 최저임금 인상운동은 2018년(16.4%), 2019년(10.9%)을 거치며 상당한 규모의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결과에 가닿았다. 구직자 이슈에 집중했던 만큼 중요했던 고용보험은 코로나19 시기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돼 개편 수순을 밟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청년유니온 혼자 다했다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청년유니온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상실했다. 기존의 노동조합들이 담아내지 못하는 ‘청년’들의 노동상담 창구, 이해 대변자, 당사자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수행하고 있지만 운동이 집단적으로 나아가야 할 다음 과제는 희미하게 떠돌고 있을 뿐이다. 청년유니온이 성과를 내도록 만들었던 ‘청년’담론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문제들이 전 세대에 걸쳐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젠더 격차,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과 불안정 노동의 확대,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왜소화 속에서 시민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청년’담론의 유효함과 ‘청년’운동의 유효함은 별개의 문제다. 사회 진입 시기의 정책적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여타 아동·노인정책과 마찬가지로 계층정책으로 자리 잡는 것이 청년정책의 도착지점이라면, 운동은 변화하는 사회 상황에 조응해 그 자신의 ‘그릇’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으로서의 확장성과 변화를 만들어 내는 동력은 과거에 멈추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와 상관없는’ 무엇이 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청년’으로 환원되는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응하는 그릇으로서 ‘청년’유니온은 협소하다. 정치적·운동적 주체로 ‘청년’을 호명하는 것은 그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입장과 격차를 지워버리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 속에서 교차하는 정체성과 그에 따른 고민들을 은폐하고 있다.

운동이 그 시대에 필요한 소명을 다하면 두 갈래 길에 놓이게 된다. 하나는 소명을 다했으므로 조용히 소멸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새로운 소명을 받들어 다른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나는 ‘청년유니온’이 그 소명을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노동조합, ‘유니온’으로서의 소명은 아직 남아있다. 청년‘유니온’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중요성과 성과들을 긍정하면서 ‘청년’이라는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소명을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다.

기존의 노동조합들이 기업별 노조 체제라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초기업 노조를 만들고자 했듯이 청년유니온 역시 ‘청년’세대를 넘어선 사회적 노동조합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 (yunion10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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