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또다시 일본의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벤치마킹하자고 나섰다. 굴지의 자동차기업인 도요타가 최근 연공에 따른 인사·임금제도를 뜯어고치고 직무와 성과중심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총은 17일 ‘최근 도요타의 인사·임금제도 혁신과 시사점’ 보고서를 내고 이같이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요타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관리직을 시작으로 일반 사무직과 기능직을 포함한 전 직원에 성과주의 인사·임금제도를 적용했다. 관리자층 직급을 5단계에서 단일직급으로 고치고, 임금도 연공서열에 따라 매년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고정급(자격급)과 개인평가에 따라 차등 인상하는 변동급(직능급) 구조였던 것을 통합해 평가에 따라 임금을 차등 조정하는 직능자격급으로 일원화했다.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이런 혁신은 인건비 효율성 차원이 아니라 연공서열 중심 제도·관행으로는 격변하는 경쟁환경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전략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표현은 기시감을 일으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공약에서 “직무·성과와 동떨어진 연공형 임금체계가 개선 없이 지속해 보수 공정성과 성과혁신 동기가 저하된다”며 직무·성과 반영 임금체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연공 중심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노동계도 대체로 공감한다. 문제는 방식이다. 우선 도요타의 임금체계 개편의 의미도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요타가 그런 임금체계를 도입한 것은 수요가 늘어나는 IT·소프트웨어 인력을 채용하기에는 당시 임금체계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도요타가 국제적 자동차기업으로 우리 업계가 많이 벤치마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차 경쟁력과 임금문제를 정확히 인식해 냉철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단순히 ‘성과주의’와 ‘연공서열 폐지’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IT·소프트웨어 인력 확충을 위한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라는 얘기다.

이런 산업의 전후방 사정과 사업장 문화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제도 수입만 주장하는 것은 결국 재계의 소원수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노사관계와 문화가 우리와 달리 사업장 내의 노동자 경영참여에 열려 있고 협의하는 분위기라는 점 같은 대목은 이런 제도 수입을 이야기할 때 항상 누락한다”며 “정말 이런 제도가 어떤 것인지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노력 없이 연공 중심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이 시점에 내놓는 것은 사실상 윤 당선자 공약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불가피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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