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 2일과 5일 현대제철 당진공장과 예산공장에서 두 노동자가 연이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는 두 건의 중대재해에 대해 현대제철 대표이사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입건했다. 실제 처벌 수준이 어떨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예산공장의 경우 생산을 위탁했을 뿐이라는 변명에도 원칙적으로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 책임이 현대제철에도 있다는 노동부 판단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예산공장에서 숨진 노동자와 현대제철의 관계는 무척이나 복잡하다. 현대제철은 예산공장의 모든 설비를 소유하고 있고, 공장 운영은 엠에스그룹 계열사인 심원개발에 위탁했다. 심원개발은 같은 그룹계열사인 엠에스티에 설비정비 업무를 도급했고, 엠에스티는 다시 사고 작업을 와이엠테크라는 업체에 도급했다. 읽어 내리기에도 숨이 차는 4단계 하청구조의 밑바닥에서 고인이 일하고 있었다. 한편 당진공장에서 숨진 노동자의 고용관계는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기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고인은 오래전부터 사고공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해 왔는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도금작업의 외주화가 금지되자 2020년 현대제철은 해당 직군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별정직(무기계약직)으로 채용했다. 도금작업의 외주화를 금지한 것은 그만큼 위험한 작업이니 직접 관리하라는 의미였지만 직접고용으로 바뀌었을 뿐 위험작업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들은 현대제철이라는 거대한 생산시스템 안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한 단계씩 도급이 늘어날 때마다 습자지가 한 장씩 겹쳐지듯 그의 존재는 흐릿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기어이 현대제철은 숨진 그와의 관계를 부정했다. 직접고용된 후에도 사내하청 노동자일 때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일하는 그에게 회사는 작업표준조차 만들어 주지 않았다. 생산현장에서 작업표준이 없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작업이라는 의미다. 이쯤 되면 질문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말 존재하기는 했던 것일까?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시스템에서는 지워진 유령들. 이 유령들의 죽음이 비정규직의 문제, 소위 ‘위험의 외주화’ 탓이라는 진단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조금 더 이해하려면 기형적인 고용구조를 탓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된다. 이제 그들의 노동을 유심히 살펴볼 차례다. 노동자가 자기 현장에서 어떤 존재인지는 계약서보다 차라리 공구를 쥔 손끝에서 더 드러나는 법이니 말이다.

당진공장 노동자는 섭씨 468도의 액체상태 아연이 가득 담긴 통에서 불순물을 걷어 내고 아연덩어리를 투입하는 일을 했다. 대기장에 있다가 제어실의 요청이 있거나 본인이 판단해서 필요할 때 작업을 했다. 설비의 가동상태에 따라 작업하는 시간도, 작업하는 조건도 천차만별이었다. 예산공장 노동자는 금형을 정비하는 일을 했다. 그를 덮친 금형은 1톤짜리였지만 현장에는 다양한 무게와 크기의 금형들이 있을 것이고 그 금형들의 상태와 조건에 따라 정비작업은 시기도 방법도 다양했을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작업에는 정형화되거나 일정하게 유지·반복되는 요소가 많지 않다. 굳이 찾자면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하다는 사실 정도일까. 이것이 소위 말하는 ‘고위험 비정형작업’이다.

잠시만 기억을 더듬어 봐도 이런 류의 작업 중 발생한 중대재해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제철소 용광로에서 불순물을 꺼내는 작업(2010, 환영철강), 발전소 컨베이어에서 낙탄을 치우는 작업(2018,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부품교체 작업(2019, 현대제철), 크레인 냉각장치 수리작업(2020, 현대제철), 화학공장의 열교환기 정비 작업(2022, 여천NCC) 등등. 제철소·발전소·화학공장 같은 장치산업은 필연적으로 극도의 위험환경을 제공한다. 때문에 이런 현장에서 이뤄지는 비정형작업들은 정형작업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고도화된 안전관리시스템을 요구한다. 동력원을 차단하는 작업절차인 ILS, 책임자의 허가와 감시인의 입회를 조건으로 하는 작업허가제 같은 제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수많은 ‘고위험 비정형작업’들이 일상적인 작업처럼 안전관리 없이 행해지고 있다.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유령 같은 위험이 늘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사업주들이 설비의 노후화와 결함을 값싼 노동력으로 때우고 있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컨베이어에서 낙탄을 퍼 담는 상황, 용암 같은 도금포트에 사람이 들어가는 상황은 하루 종일 벌어지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가끔 발생하는 ‘문제 상황’이어야 하고 그때마다 철저한 절차를 거쳐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대다수의 ‘고위험 비정형작업’이 외주화돼 있기 때문이다. 직고용된 무기계약직 노동자조차도 품지 못하는 시스템이 다단계로 도급되는 외주하청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 리 없다. 이에 더해 경영진들은 안전절차를 확대할수록 가동률이 줄어드는 상황도, 안전인력과 작업인원의 충원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대표이사는 입건된 후 분노를 담아 ‘팀장급 100일간 휴일출근 및 휴가 금지’ ‘실장급 이상 하루 일과 50% 이상 안전점검’을 명령했다. 안전점검도 현재 인력을 쥐어짜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과로사라도 발생하면 그땐 정말 중대재해처벌법 구속수사 1호가 되실 텐데.

노동부는 법 시행에 맞춰 산업안전감독을 처벌에서 예방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동안 처벌은 제대로 했는지 묻고 싶지만 우선 예방이 성과를 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만 안전관리시스템이 왜 무너지는지 고민하지 않고 지금껏 해 온 것처럼 법조문에만 매달려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또 다른 유령들의 죽음을 막을 수도 없고, 그 죽음의 원인을 이해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말해 두고 싶다. 도금포트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별정직이 됐을 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직접고용됐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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