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22. 1. 28. 선고 2020나2008508

1. 들어가며

대법원이 2015년 2월26일 선고한 2010다106436 판결로 근로자파견의 판단지표를 설시하면서 4명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지 7년여가 경과하고 있다. 위 선고 이후 소위 자동차 양산공장 내지 자동차 생산 관련 공정에 관해 대법원이 근로자파견의 판단지표를 새로이 재정립한 판결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내 시험차 도장공정과 관련해 대법원이 2020년 3월26일 선고한 2017다217724 판결 역시 위 2010다106436 판결의 판단지표를 그대로 적용했을 뿐 판단기준을 본질적으로 재정립·구체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고법이 올해 1월28일 선고한 2020나2008508 판결에서 근로자파견의 판단지표를 기존과 달리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 위 판결 중 서열·불출업무를 담당한 원고들의 근로자파견 성립 여부 판단에 관해서만 간략히 검토해 보고자 한다. 부가적으로 위 판결과 동일한 취지로 판단한 서울고법 2022. 2. 16. 선고 2020나2008393 판결의 내용에 관해서도 함께 검토했다.

2. 각 사건의 개요

가. 2020나2008508 판결(이하 ‘제1판결’)

원고들 32명은 현대자동차와 직접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서 도장공정에 종사한 하○○ 등 8명(1명은 2015년 10월경부터 생산관리 업무 수행), 서열·불출업무를 담당한 1차·2차 사내협력업체 소속 김○○ 등 10명(이 중 7명은 현대글로비스와 서열·운송 도급계약을 체결한 2차 협력업체 소속), 보전업무를 담당한 원고 박○○ 등 5명, 수출선적 업무를 담당한 원고 손○○ 등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고법(제15민사부)은 도장공정에 근로한 원고 하○○ 등 8명에 대해서는 구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고용의제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근로자임을 전제로 근로자지위를 확인하거나 퇴직금 및 단체협약상 약정금 차액 지급의무를 확인했으나, 나머지 원고 23명에 대하여는 불법파견을 전제로 한 청구 전부를 기각했다. 도장공정에 관해서는 종래 타 사건에서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아니하므로 이 부분은 검토를 생략한다.

나. 2020나2008393 판결(이하 ‘제2판결’)

원고들은 현대자동차의 각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서 5공장 차체부 내 서열·불출의 생산관리업무(서진~신정기업, 1명)·도장설비에 대한 보전업무(1명)·수출선적 출고업무(10명)·부품공급업체의 2차 부품물류회사 소속으로서 서열·불출 업무(5명)·부품조달물류 공정을 재하도급한 현대글로비스의 2차 부품물류회사 소속으로서 서열·불출 업무(12명)를 각 수행했다.

서울고법(제1민사부)은 사내서열(1명, 계쟁기간 2008~2010)·보전(1명)·출고(10명)업무 원고에 대해 직접적 지휘·명령과 공동·혼재작업을 근거로 사업의 편입, 협력업체의 독립성 부족 등을 이유로 근로자지위를 확인했다. 그러나 2차 부품물류회사 소속으로 분류한 서열·불출 업무 담당 원고들 17명(계쟁기간 2006~2014년)에 관해서는 근로자파견관계를 불인정했다.

3. 서열·불출 업무에 관한 대상판결의 요지

가. 서열·불출(생산관리) 업무의 개요

서열·불출업무는 현대자동차가 부품공급업체에 생산 순서·일시·수량을 지정한 주문생산정보(MSE)를 제공하고 협력업체가 적시 납품방식(JIS)에 따라 위 정보대로 부품을 선별해 규격 용기에 적입하고 바코드 리더기 등으로 검수하는 작업(서열)과 납품용기를 조립라인에 가져다 놓고 빈 용기를 회수하는 작업(불출)의 방식으로 수행됐다. 서열업무의 장소는 2차 부품물류업체의 자체 서열장 또는 울산공장 내에서 사내서열하는 방식이 업체별로 상이했다.

나. 상당한 지휘·명령의 불인정

원고들은 차량 및 부품 정보가 표시된 ‘서열지’(2010년 이후 서열모니터)를 현대자동차의 상당한 지휘·명령의 징표로 주장했으나, 대상판결은 이를 수급인에 대한 도급정보 제공에 불과하다고 봤다. 그 주요한 이유로 제1판결은 위 서열정보가 1차·2차 협력업체와 공유되는 도급정보이고, 2차 협력업체 역시 부품·물류업체의 이행보조자에 해당하며, 위 정보가 원고들뿐만 아니라 부품공급망에 속하는 타 업체들에게 공유되므로 이를 파견의 징표로 인정할 경우 파견의 범위가 무한정 확장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고 봤다.

특히 제2판결은 부품물류공정의 작업수행방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모두 동일·유사하나 ‘본질적으로 도급인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도급인의 업무가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업무구조라는 점이 인정돼야’ 파견근로가 인정될 수 있으나, 사양식별표·서열지 등은 자동차생산정보(MSE)에 따라 생성돼 부품공급망 관련 업체에 모두 제공되는 객관적 정보에 불과하므로 상당한 지휘·명령의 징표로 불인정했다.

한편 원고들은 지휘·명령의 증거로 의장라인에서 조립될 부품명·품번·수출지역 등을 기재한 ‘차량사양표(조립작업지시서)’를 제출했는데, 제1판결은 이에 대해 의장공장 내 조립작업 담당 근로자를 위한 정보일 뿐 서열·불출 담당 근로자에게 작업지시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근로자파견의 증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 사업 편입 등 나머지 파견 지표의 불인정

서울고법 계쟁기간, 즉 여기서는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을 다투는 기간’에 관해, 현대자동차가 원고들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는 증거 및 하나의 작업집단을 이뤄 공동 작업을 수행하였다고 볼 ‘장소적 혼재’의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제1판결은 현대자동차 소속 근로자들 중에서도 서열·불출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있으나 수행 장소·대상이 다르고 직접 공동작업의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나아가 서울고법은 협력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작업표준서를 만드는 등 인사·근태관리·작업배치·교육 권한의 독립적 행사와 자체적인 인적·물적 조직의 독립성 및 도급관계의 비전속성을 원고들에게 불리한 사실로 인정했다.

4. 대상판결의 검토

1) 이 사건 제1·2판결의 원심판결은 2020. 2. 6. 서울중앙지법(제41민사부)이 선고한 각 2016가합524512·2016가합524550호 사건으로, 제1심 판결은 부품물류업체 소속 원고들의 근로자파견관계 성립을 모두 인정한 바 있다. 당시 제1심 판결은 생산관리업무에 관해 컨베이어벨트에서 이뤄지는 작업의 연동·‘블록화’ 근무 및 근무형태의 종속성을 인정하는 한편 현대자동차의 사양식별표 및 서열지·서열모니터를 상당한 지휘·감독의 수단으로 인정했고, 사내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이 독자적 수급인으로서 별도의 구체적인 지휘·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 대상판결 선고 직전 서울고법은 2022. 1. 26. 선고 2020나2002395 판결을 통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내 서열·불출 업무 종사 근로자들(6명)에 관해서는 근로자파견을 인정했다. 당시 법원은 사양식별표·서열모니터 등을 통한 상당한 지휘·명령권의 보유·행사를 인정하면서 2차 사내협력업체의 독자적 지휘·명령은 찾아보기 어렵고, 컨베이어벨트의 생산일정 및 속도에 연동되는 점을 사업 편입의 징표로 봤으며, 그 외 사내협력업체들의 독자적 권한 또는 독립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봤다. 위 1) 및 2)의 판례를 고려하면, 제공방식을 막론하고 대상판결에서만 생산에 필수적인 서열정보가 제공된 점을 상당한 지휘·명령의 사실로 인정하지 아니한 점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3) 제2판결은 1차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서 생산관리업무에 종사한 원고 1명에 대해서는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면서 서열·불출 공정을 재하도급받은 제2차 부품물류회사들 소속 원고들에 대해서는 근로자파견관계를 불인정해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고, 계쟁기간도 중첩된다. 단 근로자파견이 인정된 원고의 경우 정규직 근무조와 하청 근무조로 작업반을 조직한 점 및 혼재근무·‘블록화’ 공동근무·대체근무를 각 수행한 점, 협력업체의 독립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는 점을 판단 이유로 들었다.

4) 한편 대상판결은 ①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사내 동선을 제공한 것의 불가피성 ② M/H(맨아워)를 기반으로 힌 표준T/O 운용의 탄력성 ③ 정규직과의 협업·대체근로의 부재 ④ 서열장의 사외 재배치 및 운용 ⑤ 협력업체의 자체 조직 및 전산프로그램의 운용을 근로자파견관계 불인정의 중요한 근거로 들고 있다. 이는 기존에 2차 협력업체 내지 사외 작업장에 관한 불법파견 인정 판결에서 이유로 든 ‘유기적인 작업 연계’가 약화된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고, 이로 인해 동일한 도급정보라도 ‘상당한 지휘·명령’으로 평가되지 않거나 ‘사업 편입’의 지표가 불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5. 결어

대상판결은 부품공급업체 또는 통합물류업체에 대한 2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해 근로자파견을 불인정한 것으로서 기존에 직접생산공정에 투입된 지게차 운용 등 생산관리 근로자에 대한 판결과는 구분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협력업체의 독립성 및 장소적 구분성을 차치하고, 혼류생산방식에서 정확한 서열하에 적시에 부품 불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대자동차의 생산 일정 및 속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내 불출·서열업무와 패소한 원고들의 업무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판단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사업 편입’을 인정하기 위해 혼재·공동근로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 아니함은 현대모비스 판결(대법원 계류 중)·제철소(포스코, 현대하이스코) 판결 등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나아가 과거와 달리 협력업체의 권한 및 독립성이 동등한 판단 지표가 아닌 부차적·보완적 고려 요소로 보는 법리가 확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한 지휘·명령 및 사업 편입의 판단에 관해서도 대형화·다각화된 협력업체의 양상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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