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TV 켜지 마.” 이번 대선의 후유증이 대단했다. 지난 10일 길었던 하루를 보내고서 집에 돌아와 저녁뉴스를 보려고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TV를 켜지 말라고 마누라가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개는 출근하기 싫은데 억지로 사무실에 나왔다 하고, 다른 아무개는 두문불출이라 하고, 또 다른 아무개는 앞으로 5년을 어떻게 살까 한숨을 짓는다더니 우리 집에도 그런 이가 있었다. 20대 대통령 선거의 개표 뒤에 일어난 일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낙담해 이렇게까지 하는 게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윤석열이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들이 무심한 나와는 너무도 다르다고 느꼈다. 뭐라 하거나 말거나 봐야 할 뉴스는 보겠다고 나는 TV를 켰다. 그리고 어떤 세상이라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니 오늘도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면서 사건 더미에 파묻혀 종종거리며 나는 일해야 했다. 이렇게 나는 이재명이 낙선하고 윤석열이 당선된 것보다도, 사용자가 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정당하다고 판결하고, 공공기관 자회사 근무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한 것이라고 판결하는 법원의 태도에 절망한다. 어떻게 노동자 권리를 위해 바로잡을 수 있을지에 골머리가 아프다. 20대 대통령 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 자신이야말로 국민을 위하는 후보이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은 후보라며 대선후보들이 쉴 틈 없이 선거운동을 하던 있던 8일에도 나도 오전에 서울중앙지방법원, 오후에는 서울고등법원으로 바빴다. 다른 사업장 사건이지만 같은 쟁점에 관해서 노동자의 청구를 인정해 주지 않는 법원 판결이 잇달아 나오고 있어서 심란한 임금피크제 사건 재판에, 자회사 전환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청구를 인정해 주지 않은 1심 판결에 불복해서 항소심에서 다투고 있는 불법파견 근로자지위청구 사건 재판까지 어떻게 해야 승소할 수 있겠는지를 궁리하면서 변론하느라 바쁘기만 했다. 이렇게 지난 한 주를 나는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바빴다고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2. 물론 나로서도, 윤석열의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 염려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표준임금체계와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공약한 데 대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연공급제의 임금체계를 직무가치·성과 반영 임금체계로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임금제도에 있어서 노동자의 임금 권리 향상을 공약하지 않고 근속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바꿔 내겠다고 공약한 것이니 공약대로면 윤석열의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또 다시 사용자 자본과 권력의 직무·성과급제 도입 타령을 지겹도록 들어야 하게 생겼다.

이 나라에서 권력과 자본이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노래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이미 노무현 정권이던 2003년 마련된 노사관계 로드맵에서도 임금체계 합리화로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검토 방안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임금제도 개선 방향으로 도입하고 추진했다. 따지고 보면, 노동존중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성과주의 임금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문재인 정부가 천명했던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아래서도 직무·성과급제로 임금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끊임 없이 제기돼 왔다. 그렇더라도 노골적으로 대선공약으로 들고 나온 윤석열의 나라에서는 이전보다 맹렬하게 몰아붙일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른바 ‘이대남’이 공정 운운하면서 늙은 노동자가 많은 임금을 받고 자신들이 적게 받는 데 불만이 있다고 보수언론 등에서는 보도해 왔는데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실 공공을 내세우고 있지만 도대체가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공공을 말한다면, 그동안 연공급제로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던 임금부터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그 방안부터 제시해야 했다. 연공급제란 근속기간이 짧은 시기에는 낮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고 근속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호봉 상승 등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제도라서 지금 고령의 장기근속자에게는 사용자가 과거 수십년 동안 낮은 임금을 지급했다는 걸 실토하고 있다.

이런 직무·성과급제와 결을 같이 하는 임금제도가 바로 임금피크제다. 정년을 몇 년 앞둔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 지급하는 임금제도가 오늘 이 나라에서 사업장에서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임금피크제다.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받아 온 임금을 대폭 삭감하도록 한 이 제도를 노동자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받아들여야 한다. 노동자는 도대체가 납득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노동자들을 대리하는 나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며 삭감한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 사건으로 바빠야 했다.

3. 이번 대선을 앞두고 <매일노동뉴스>에서 기획특집으로 ‘한눈에 보는 대선후보 노동공약’라는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그 공약 사항 중 비정규직 대책도 포함돼 있었다. 이재명 후보는 상시적이고 생명·안전 관련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하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비정규직 평등수당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는 없었다. 기사가 후보들의 공약을 제대로 분석·정리한 것이 맞다면 아무것도 공약하지 아니한 윤석열의 나라에서 어떠한 비정규직 대책이 나올 것인가. 공약한 것이 없으니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하는 대로 하는 것일까. 그나마 파견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등 비정규직법을 사용자에게 비정규직을 보다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으로 개정하겠다고 공약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아무것도 공약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대로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문재인 정부에서 해 오던 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전혀 그럴 것 같진 않다. 의문은 자꾸만 의심으로 달려간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추진됐다. 대거 자회사 방식으로 변질돼 추진됐다. 그 때문에 비판할 수밖에 없지만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당초 취지만큼은 비난하고 싶지 않다. 20대 대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고법에서 나는 자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대리해 자회사 근무가 파견법상 사용사업주의 고용의무를 이행한 것도 아니고, 파견법상 파견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해야 했다. 재판장과 주심 판사의 태도에 주눅이 들었는지 법정을 나오면서 원고들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판사의 태도를 가지고 판결을 연결짓지 말라고 말하면서 살펴봤다. 그들은 여전히 소송하겠다고 찾아왔을 때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들도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것에 낙담하고 있을까. 어쩌자고 이렇게 나는,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 선출 소식에 거창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의뢰인 노동자의 표정을 소심하게 살피는 것일까.

4. 위와 같이 살펴본 윤석열의 나라에서 염려되는 임금제도, 비정규직 대책은 결코 거저 오지 않는다. 대통령 맘대로 오지 않는 것이다. 비정규직 대책은 아무것도 공약하지 않았으니 지금 윤석열의 나라에서 나올 대책을 구체적으로 살피기 어렵다. 연공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바꾸는 일에 대해 살펴보자. 이 일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대통령령이나 행정집행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사 당사자 간 합의로 정해야 할 임금제도를 법률로 정하기도 어렵다. 그걸 대통령 맘대로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권력으로 압박해 도입을 추진하더라도 사업장에서 적용받고 있는 임금제도를 변경해야 한다. 노동자·노조가 동의해 주지 않는 한 원칙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신규채용되는 ‘이대남’에게는 사용자 맘대로 취업규칙을 변경해서 적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노동자 일반에게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알고서 보면, 노동자 대응은 어렵지 않다. 동의로 거래하지 않으면 된다. 지금까지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사업장을 보면, 대부분 사용자와 동의로 거래했다. 버티면 될 일이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의 공약 중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 좋지 않은 것을 보자. 노조의 불법을 엄정하게 대처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을 현행 1개월 또는 3개월 이내를 1년 이내로 확대한다는 것 정도다. 노동에 관한 공약은 많이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이 중 노동자의 권리에 해당하는 것은 노동시간에 관해서 공약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을 확대하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이행할 수 있는 공약이다. 그러니 과반의석을 넘어 170여석을 가진 민주당이 반대하면 윤석열의 나라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고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고 노동자가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걱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실현을 걱정할 일이면 이재명이 당선됐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더구나 현행법은 1개월 또는 3개월 이내의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사용자가 도입·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대표가 합의해 주지 않으면 사업장에 도입할 수가 없다.

문제는 노동자의 자유에 관해서다. 공약한 대로 윤석열의 나라에서 노조의 불법을 엄단한다면 걱정이다. 불법을 엄단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도, 이 나라에서는 노조는 겁을 먹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자의 자유, 노조활동이 당연하게 인정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조를 통해 교섭·쟁의행위를 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서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 등을 규정해 놓고 이를 준수할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한다고 말하는 나라 중에 이런 나라는 없다.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단결의 자유가 원칙적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다. 노동존중을 외쳐 온 문재인의 나라에서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런 법을 두고서 윤석열은 불법 엄단을 말한다. 노동자의 자유, 단결의 자유를 알지 못하고서 하는 말이다. 무지가 일반화돼 공공연하게 노조활동에 대해 불법 엄단을 말하고 공약하고 있다. 그래서 공약을 이행할까 봐 염려가 된다. 그런데 말이다. 언젠가, 어떻게든 넘지 않고는 달리 길이 없다. 노동자의 자유, 단결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노동자 자신의 투쟁으로 넘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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