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규 변호사(법률사무소 시대)

직장갑질119는 이번 대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앞둔 지난달 13일 소속 노동전문가 등이 뽑은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공약 베스트(Best) 10’을 공개했다. 1위는 ‘상시·지속업무에 계약직 사용 금지’였다. 2년을 초과해 일하면 정규직이 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사용자가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것을 막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간제법 제정에 이른 역사와 시행 후 경과를 들여다보면 직장갑질119의 지적이 너무나도 타당하다.

기간제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근로기준법에서 기간제 노동계약의 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는 제한을 두고 있었다. 대법원은 이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 1년 이후의 노동관계는 정규직과 동일하게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88다카21296 판결). 하지만 대법원은 불과 7년 만인 1996년 입장을 바꿨다. 노동자가 1년이 지난 후 근로기준법의 제한 규정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 뿐이고, 정규직과 같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95다5783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이 기간제 계약시 기간설정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 1998년 외환위기 사태를 거치며 상시·지속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제 노동자의 숫자가 급격히 늘자, 정부가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할 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기간제법 제정이 추진되던 2004년 당시 참여정부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기간제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22개월에 불과했다. 기간제 노동자 중 채 절반도 되지 않는 수가 2년 이상을, 17.8%가 3년을 넘어서까지 계약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사용자들이 고용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서 기간제 계약을 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간제법으로 2년을 초과해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겠다고 하니, 어떤 사용자가 2년을 넘어 고용을 유지하겠는가.

정부 통계에 따르더라도 지난해 8월 기준 기간제 노동자는 517만명에 달하는데 이는 전체 임금노동자 2천99만명 중 24.6%를 차지는 숫자다. 특수고용 노동자(10.8%)나 정규직으로 분류됐을 간접고용 및 노무도급, 그 외 가짜사장으로 위장당한 경우까지 보태면 불안정노동에 내몰린 사람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기간제법이 시행된 2007부터 2017년까지 2년 주기로 실시한 사업체 패널 조사에서 사업체들이 기간제 노동계약을 체결하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사업체 중 50%가량은 ‘고용유연성’을, 20%가량은 ‘인건비 절감’을 그 이유로 꼽았다. 기간제법은 2년까지는 어떠한 사유제한도 없이, 또 그중에 특정 업종에는 2년을 넘어서까지도 기간제 계약을 반복 체결하는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기간제법은 근로기준법의 핵심 규정인 해고 제한 법리를 무력화해 항시적인 고용불안 상태를 만든다. 보호법제라는 기간제법이 노동자를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 회사가 어려워지면 나가야 할 사람으로 규정짓고 있다.

노동자는 헌법상 ‘근로의 권리’에 근거해 부당한 해고, 그리고 이에 준하는 사유로 비자발적 실업 상태에 놓이는 것으로부터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최소한 상시·지속 업무의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 노동계약을 체결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정규직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프랑스와 같이 일시적 수요나 결원 대체 등 극히 예외적인 사유가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정될 때에만 기간제 노동계약을 허용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 산하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 특별위원회는 2003년에 이미 기간제법 정부안의 초석이 된 공익위원안을 참여정부에 제출하면서 사유제한 없는 기간제 허용규정으로 인해 대량해고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되레 2년 이상 반복 체결 가능한 예외업종을 넓혀 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상시·지속업무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일부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예를 제외하면 자회사 직접고용이라는 꼼수로 ‘사실상 정규직화 제로’라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당선자는 비정규직 사용 비중이 과도할 경우 고용보험료율을 가중하는 등 페널티를 주는 것이 낫다며,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제도화를 거절했다. 다들 알고도 모른 척하거나, 아니까 안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