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거리 높은 건물 외벽에 철 따라 시구절이 나붙는다. 된바람 송곳처럼 파고들던 겨울엔 온기를, 땡볕 내리쬐던 여름엔 시원함을 전한다. 봄이라고 바꾼다. 줄 탄 사람들의 일이다. 거기 적힌 말엔 그늘이 없다. 겨우내 추웠던 사람들이 문득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위로 삼을 만한 글이다. 일터에서 집에서 또 어디서 이리저리 부딪혀 닳고 지친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른다. 거기에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들 황사와 미세먼지의 괴로움에 대해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뭐든 좀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사람을 살게 한다. 철 따라 쏟아진 온갖 약속은 달콤하기 마련이다. 공정과 상식이 바로 선 밝고 희망찬 미래가 그 말속에 벌써 왔다. 위대한 국민의 일이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앞으로 겪을 그늘에 대해 공약집에 세세히 적을 수는 없었을 테니, 그건 누구나의 몫이다. 철이 바뀌는 때, 봄꽃과 잡풀과 개구리 날벌레보다도 가장 먼저 외줄에 매달린 사람들이 밥벌이 나서 봄을 알린다. 무심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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