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선거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71만2천121표(3.01%)를 얻었다. 선거 결과를 두고 ‘참패’라는 평가가 나왔고, 결국 이를 빌미로 민주노동당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으로 대표되는 그룹이 갈라져 나갔다. 평가 기준은 이전 대통령선거 득표와의 비교였다.

이번 20대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80만3천358표(2.37%)를 얻는데 그쳤다. 17대 대선의 경험에 따르자면, 당이 쪼개지고도 남을 결과다. 19대 대선에서 심 후보는 201만7천458표(6.17%)를 얻었다. 하지만 아직 이번 선거 ‘참패’에 대한 평가는 없고 ‘지못미 12억원’의 미담을 알리는 언론홍보만 눈에 띈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6석을 얻고도 ‘참패’로 규정짓고 당지도부를 교체하던 모습과도 대비된다. 필자가 보기에 지난 총선에서 최대 승자는 손쉽게 6석을 얻어 의석수를 그대로 유지한 정의당이었다.

“이번엔 미안해요. 다음 대선엔 꼭 찍어 줄게요”는 노무현이 당선된 2002년 12월의 16대 대선 때부터 되풀이한 철 지난 레코드 소리다.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95만7천148(3.89%)를 얻었다. 이번에 심상정에게 오려던 ‘2030여성’의 표가 이재명으로 대거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표들이 다음 대선에서 정의당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21세기에 들어와 이뤄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돌아보면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승리한 선거에서 진보정당도 승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이 이겼을 때, 권영길도 최다 득표를 했다. 2004년 4월 국회의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압승을 거뒀을 때, 민주노동당도 10석을 얻어 당당히 국회에 진출했다. 2017년 3월 대선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이 이겼을 때, 심상정도 200만표 넘게 얻었다. 지난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도 마찬가지다. 당시 정의당이 얻은 6석은 투입(input)을 훨씬 뛰어넘은 산출(output)이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는 표가 심상정이 아니라 윤석열에게 간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또한 윤석열은 아니라는 표가 심상정이 아니라 이재명에게 간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양당 정치가 혐오를 뿜어낼 때 정의당이 그 대안이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선거는 한국 대통령선거 역사상 최초로 진보정당을 끼운 3자 구도로 펼쳐졌다. 그런데도 정의당 심상정의 득표율은 민주노동당 탈당 그룹이 ‘참패’라고 평가한 2007년 대선 권영길의 득표율만도 못하다.

이번 대선에는 정의당 말고도 스스로를 좌파라 규정한 정당들도 후보를 냈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 3만7천366표(0.11%),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 1만8천105표(0.05%), 이백윤 노동당 후보 9천176표(0.03%)였다. 심상정을 비롯해 모두 4명의 진보정당 후보들이 얻은 표를 합하면 86만8천5표(2.55%)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민주노총 100만명 조합원의 표는 얼마를 차지할까. 이들 정당은 대부분 이런저런 모양새로 민주노총 내부의 정파 구도에 관여하고 있다.

 

필자는 이번 대통령선거의 의미를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력의 역사적 실패로 규정하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1997년 출범한 ‘국민승리21’을 계승해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에서 이어져 온 정치운동을 말한다. 1987년 여름의 노동자대투쟁으로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이 주도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악전고투를 벌이다 드디어 그 종착역에 다다른 것이다. 정의당은 조직 노선에서 다수자 정당을 버리고 소수자 정당으로 전환함으로써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내렸다. 나머지 진보정당들은 ‘정파 정치’를 뛰어넘는 현실적 대안이 전혀 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면면을 볼 때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의 참패는 노동조합운동에 기반한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식 정치세력화 노선이 좌초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인적 구성과 물적 자원, 그리고 조직적 기반을 고려할 때 이후 언제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을지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다. 또한 그 방식이 노동조합운동을 통한 정당의 건설이 될지, 역으로 정당 건설을 통한 노동조합운동의 혁신이 될지도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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