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파리 똥구멍이 아무리 달다 한들

새벽 5시40분에 ‘따르릉’ 알람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점심 먹고 마무리되는 일정이라 뜨거워지기 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게 일정이 짜여 있다. 대충 씻고 짐 정리해서 기대 없는 밥을 먹으러 나갔다. 시리얼·빵·과일·커피가 있는 쪽과 베이컨·달걀 등등 따뜻한 음식이 있는 쪽으로 나뉘어 있는데 둘 사이에는 4달러라는 벽이 놓여 있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시리얼과 과일이면 됐지 하며 돌아서는데 딸아이가 접시 가득 베이컨과 달걀을 담아 오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해치우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75마일 비치를 내달렸다. 어젯밤부터 그랬지만, 이 동네에는 제법 덩치가 큰 파리들이 쉴 새 없이 꼬인다. 여간 성가신 놈이 아닌데, 가이드 총각이 파리 한 마리를 잡더니 똥구멍을 빨아먹는다. 엄청 달단다. 아무리 달다 한들 내키지 않는 일인데 하필 나랑 눈이 마주쳤고, 동양인을 만만하게 보는 눈빛이 살짝 스치더니, 다른 한 마리의 똥구멍을 내게 갖다 댄다. 음~. 그 뒤는 상상에 맡기겠다. 맛은 뭐 나쁘지 않았다나 어쨌다나.

여기가 진짜 야생이다!

바다를 끼고 모래사장을 덜컹거리면서도 시원하게 내달리는데 개처럼 생긴 녀석들이 곳곳에서 머리를 내밀고 지나는 버스를 바라본다. 이 동네 사는 들개의 한 종류인 ‘딩고’라는 녀석이다. 보기에는 그다지 험상궂게 생기지 않았는데, 가이드는 요주의 동물 중 하나라며 조심하라고 일러 준다. 딩고가 멀어져 갈 즈음, 사람들이 반대편 창문에 머리를 대고 “우와~” 하고 외친다. 뭔가를 본 모양이다 싶어 재빨리 창문에 달라붙었더니 투명한 물속으로 제법 커다란 거북이가 여유 있게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내려서 다가가 보려 했더니 거북이답지 않은 스피드를 내며 파도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몇 군데 경유지를 거쳐 마지막으로 인디언 헤드를 향했다. 말 그대로 인디언 머리 모양의 언덕이다. 언덕이란 이름에 맞게 오르는 길이 힘들거나 하지는 않다. 언덕 끝부분에 서면 프레이저 아일랜드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것이 이 동네 뷰 맛집답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파노라마 뷰를 감상하고 있는데, 절벽 바로 옆 해변의 얕은 물속을 떠다니는 커다란 그림자가 보였다. 바닷속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날개를 펄럭이며 파도를 넘나드는 모습이 언뜻 보면 <쥬라기공원>에 나오는 익룡을 닮기도 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가오리였다.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덩치가 큰 가오리. 세 마리의 가오리가 파도와 리듬을 맞춰 가며 보여주는 그 신묘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턱이 아래 위 풀 사이즈로 개방되고 말았다. 가오리들 근처를 지나는 다른 그림자도 있었는데, 가이드가 그 녀석은 상어라고 알려 준다. 가오리를 본 몇몇은 멀리서 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오리와 같이 헤엄을 쳐 보겠다며 물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 쓸데없는 짓이란 건 뛰어든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헤엄치는 가오리나 모두가 아는 일이다. 거북에 가오리, 상어까지 보게 되니 비로서ㅅ소 프레이저 아일랜드에 온 보람이 느껴진다. 이게 바로 찐 야생의 맛이지. 내가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어! 전날의 굶주림은 깨끗이 잊고 요녀석들에 대한 기억만 데려 가야겠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만으로도 좋아

역시나 맛대가리 없는 점심을 끝으로 투어는 마무리됐다. 커피 한 잔도 내어주지 않았으니 이번 투어의 식사는 최소한 일관성은 있는 셈이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서 새벽같이 일어나 챙겨 왔던 커피를 타온 우리 스스로를 칭찬했다. 이제 이 승차감 거지 같은 버스를 세 시간이나 타고 숙소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가족들과 함께 브리즈번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카드로 맛난 저녁을 먹어 주리라 다짐하며 잠시 기절하기로 한다.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어느새 브리즈번이다.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대낮처럼 밝지만 시간은 벌써 오후 6시. 숙소로 가기 전 이틀 동안 참아 왔던 보복 소비를 위해 퀸즈몰로 향했다. 일단 리쿼숍 문 닫기 전에 와인과 맥주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 미션을 완수하고, 숙소에서 샤워를 한 뒤, 이번에는 저녁식사를 하러 다시 퀸즈몰로 향했다. 오늘 저녁은 반드시 맛난 걸 먹어야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OO러버스’라는 이름도 반밖에 기억나지 않는 태국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니 딱히 태국 음식만 파는 건 아니었다. 보복 소비는 역시 무서웠다. 이 식당의 메뉴를 다 먹어 버리겠다는 듯이 피자에, 파스타·치킨에 태국식 볶음밥까지 대여섯 가지 메뉴를 시켜놓고는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먹었다. 이틀반 만에 밥 같은 밥을 먹었다. 게다가 손에는 오늘의 남은 밤과 내일 아침에 먹을 식량까지 들려 있으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이 행복감을 이어 가기 위해 숙소에서 오이 마사지로 뜨거운 햇빛에 달구어진 피부를 진정시키며 잠자리에 든다. 이제 이 여행도 마지막 짐을 싸는 일만 남겨 뒀다. 잠시 떠나 있어 조금은 낯설어져 있을 일상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여행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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