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당선자 확정 결과가 나오는 새벽까지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간의 표차가 워낙 초박빙이어서 선거 결과가 서로 순위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을 보여줬다. 비록 이재명 후보가 0.8%포인트의 차이로 졌지만, 선거 기간 내내 정권심판론이 우세했던 점을 미뤄 본다면 상당한 세 반전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임기 말인데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평가 조사 지지율도 세 결집이 상당하게 이뤄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재명 후보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세 결집이 이뤄졌을지는 의문이다.

민주당은 불과 2년 전 총선에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까지 포함하면 국회의원 180석이라는 초유의 압승 결과를 얻었다. 그렇지만 당시 모든 언론과 여론은 오만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많은 국민은 이제 더는 국회 의석수가 작다는 핑계를 대지 말고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 경고를 무시한 결과이든 아니면 국정과 의정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한 결과이든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민심은 급격하게 이반하기 시작했다. 여론은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다. 그간의 성과를 두고 본다면 더 냉혹한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억울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재명 후보가 여러 가지 공격당할 지점이 있었음에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당의 주류 바깥에서 힘을 끌어들일 수 있었기에 당선될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들어 냈다고 본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득표율은 2.37%로 지난해 선거에서 득표한 6.17%의 반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심상정 후보 지지율이 마지막까지 진보의 자존심을 지킨 이들이 보낸 표심의 결과라고만 해석하기도 어렵다. 개표방송 중 유권자 이념 지형도를 보여주는 장면이 짧게 나왔다. 지난 대선과 비교하면 정치적 성향을 진보라고 밝힌 유권자의 비율은 줄어들고, 보수와 중도 비율이 늘었다. 각 후보에게 지지를 보낸 유권자의 이념 지형, 또는 속마음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심상정 후보에게 지지를 보낸 유권자는 진보보다는 중도가 훨씬 높게 나왔다. 이념에 따른 선택이라기보다는 상당수는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가 싫어 제3의 세력에게 표를 보냈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그간 진보정당을 지지했던 진보진영의 유권자 대부분이 이번 대선에서는 다른 후보, 특히 이재명 후보에게로 빠져나갔다고 볼 수 있다.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 꼼수로 인해 정치개혁의 성과도 전혀 맛보지 못했고, 또한 총선 이후에는 당의 정체성 논란으로 지지자의 상당수를 잃었다. 정의당은 당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감 속에서 이번 대선을 맞이했다. 선거 결과 제3세력으로의 존재감은 보였지만 대단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다당제 정치를 주장했던 안철수 후보의 갈지자 행보와 투항도 존재감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이 부정적인 요소만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보 집결을 이루지 못한 점은 앞으로의 험난한 길을 예고한다.

아무튼 새로이 시작해야 할 때다.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의제의 영역은 분명해졌다고 본다. 노동·젠더·기후를 하나로 이어 내는 큰 이념적 지형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의제를 균형감 있게 배분하는 방식을 넘어 의제를 구조적으로 설계해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세 영역이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강화하는 구조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단지 진보진영 내부의 결집뿐만 아니라, 비전 설계자로서 능력을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길이다.

제도는 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제도 설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상 지나치게 제도의 수혜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제도 설계자, 제도 형성자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오히려 생활 속에서 다중의 역량을 모아 낼 수 있는 다양한 시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지도자가 없는 시대라고 한다. 21세기는 지도자가 없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할 시대가 됐다. 지도자 없는 시대에는 무엇으로 전진할 수 있을까. 네트워크와 연대다. 진보적인 역량의 사회적 연대를 복원하는 길이 진보가 살아날 길이고, 또 방향이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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