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20대 대선이 그 끝에 이르렀다.

이 글이 게재될 10일이면 이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지난 4일과 5일에 사전투표가 있었다. 투표율은 36.69%였다. 역대 최고다. 19대 대선과 비교하면 약 10%포인트가량 더 높다. 뜨거운 만큼 아쉬움도 많은 선거였다. 지난 몇 달간의 소회를 간단하게 남겨 보고자 한다.

지겨운 시간이었다.

지지율이 왔다 갔다 하면서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긴 했지만, 그건 단순한 장면 전환에 불과했다. 서사가, 그러니까 알맹이가 없었다. 서사는 정과 반의 대결이 만들어 낸다. 그래야 갈등이 생기고 긴장감이 돌아 시선을 집중하게 된다. 이번 대선은 일관되게 흘렀다. 분열과 대립, 거짓과 위선, 막말과 저주, 부정부패가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출했다. 어떤 울림도, 희망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주인공이 뒤바뀌었다.

국민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후보가 앉았다. 상대를 비난하면서 자신을 치켜세웠다. 내가 그래도 상대보다는 괜찮지 않으냐가 주된 선거 전략이었다. 그 말이 옳든 그르든 남는 건 후보뿐이었다.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그래서 국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덜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라를 책임지고 운영할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데 말이다.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극심한 불평등, 기후위기, 펜데믹, 만연한 차별과 혐오 등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결될 것 같진 않다. 그건 문제의 원인으로 결과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변화는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불행히도 이번 대선은 시작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변화의 목소리가 묻혔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고민하며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한계가 극명했다. 사실상 두 가지 선택지를 강요당했다. 숫자와 색만 다를 뿐 두 선택지의 내용은 큰 차이가 없었다. 민의를 모으고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할 선거가 왜곡되고 뒤틀렸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역별 분열에다가 성별·세대별 분열까지 더해졌다.

너와 나 사이가 갈라지면서 우리라는 의식이 희미해졌다. 정치 진영에 따라 나의 허물은 눈 감고 상대의 허물은 키웠다. 없는 것까지 억지로 만들어 내려고 했다. 상대를 죽이려는 듯이, 그리고 선거에서 지면 내가 죽는다는 듯이 싸웠다. 경쟁이 아닌 전쟁이었다. 누가 승리하든 상처뿐인 승리다. 치유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적고 보니 암울한 말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거가 끝나고도 감시하고, 행동하고, 연대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해야 한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모든 유권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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