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앉아 오래 버틴 사람들이 핫팩 꼭 쥔 손 들어 구호를 여러 번 외쳤다. 수없이 했던 일이니 군 동작 없이 간결했다.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졌고, 사람들은 마냥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틈틈이 스마트폰 들어 뉴스를 살폈고 단톡방 오가는 소식을 확인했다.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가 교문을 뛰어 들어가는 짧은 영상을 그 틈에 슬쩍 또 봤다. 집에 간다. 꼬질꼬질 낡은 침낭을 손에 들고 빵빵한 배낭을 등에 맸다. 조끼는 벗지 않았다. 그간 어디서든 제일 먼저 올려 매어 둔 노조 깃발을 갠다. 그거 지키느라 애쓴 거라고, 보고대회 앞자리 선 사람이 말했다. 화답이 컸다. 형님, 또 봅시다. 아니, 우리 너무 자주 보지는 맙시다. 껴안고 인사 나누는 사람들 눈빛이 서글서글, 길에서 어깨 맞댄 시간이 길어 저들은 가깝다. 그 힘으로 버틴 거라고 누가 말했고, 듣던 사람 몇몇은 눈이 붉었다. 울지는 않았다. 빌딩 사잇길로 오후 볕이 들어 한기가 누그러졌다. 봄볕이라 부를 만했다. 집으로, 일터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은 어깨 겯고 걸었다. 동지라고 부를 만했다.
노조 깃발
- 기자명 정기훈
- 입력 2022.03.07 07:30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