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여성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 후보를 제외하고는 ‘이대남(20대 남자)’에게 찍히지 않는 데 골몰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청년공약으로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가 제시되고 있다. 남녀 임금·고용격차, 성폭력, 육아·가사 독박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대책은 사라졌다.

성평등 실현 위한 정책이 안 보인다
허윤정 한국노총 여성본부 실장
 

▲ 허윤정 한국노총 여성본부 실장
▲ 허윤정 한국노총 여성본부 실장

이번 대선에서는 크게 눈이 가는 여성정책, 특히 여성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주요 대선후보 모두 ‘성별 임금격차 해소’ ‘경력단절 해소’ ‘보육·돌봄 지원’ ‘젠더폭력 근절’같이 대동소이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들 모두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용어만 다르고, 이름만 바뀌었을 뿐.

오히려 여성에 대한 이슈는 특정 세대와 성별의 반감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한 후보의 전략으로부터 대두한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여가부 폐지 논란은 조직의 명칭과 역할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 오히려 여가부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부딪혔고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하다. 그러나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대남이 느끼는 차별과 불평등이 과연 여가부 존폐로 해결될 일인가 하는 것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결하지 않고 과연 그들이 느끼는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본질은 두고 변방만 건드리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는 ‘성격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성격차지수는 156개국 가운데 102위라고 한다. 우리 사회가 아직 성평등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가 잠식한 사회에서 여성이자 노동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일터와 가정에서 지는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다. 일자리는 사라졌고, 육아와 돌봄부담은 늘어났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일은 요원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특정세대·특정성별의 반감과 반대를 양분으로 하는 주장에 발목 잡혀서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새롭게 당선되는 대통령은 소모적인 젠더갈등을 끝내고,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바꿔 낼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중도 포기 없이 이행해야 한다. 성평등 사회 실현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임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그대에게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공감)
▲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공감)

변호사이기 전에 20대 여성으로서 대선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20대 여성을 모두를 대표하는 얘기가 될 수는 없더라도 그 정체성을 가지고 글을 쓴다.

얼마 전에 한 대선 후보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발언해 논란이다. 이 후보는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얘기한다. 구조적 성차별은 정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가?

지표는 분명하다. 여성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52.3%, 반면에 정규직 중 여성의 비율은 38.4%이다. 비정규직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다. 양질의 일자리는 남성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성의 월 평균 임금은 남성의 66.3%밖에 안 된다. 강력범죄의 피해자 중 89%가 여성이다.

내 주변의 여성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한 번쯤은 폭력적인 관계에 노출된 적이 있고, 경력단절과 빈곤을 두려워한다. 가정·학교·회사 그리고 대중교통과 음식점 등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성차별적인 발언을 듣거나 성희롱 또는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 직장에서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낮아져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일상에서는 안전하기 위해 공간에 카메라가 있는지 확인하며, 주거비용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헤어질 때면 잘 도착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으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여가부 폐지’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요구사항을 공약으로 만든 것이다. 커뮤니티의 ‘이대남’의 표심을 잡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대남은 목소리로라도 나타나는데 이대녀는 지표에만 등장한다. 등장하지 않는 이대녀, 말하지 않는 이대녀, 그게 바로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힘이다.

나는 각종 ○○녀들이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하던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페미니즘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일자리를 잃던 때에 성인이 됐다. 이대녀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목소리를 내면 삶은 재단되고 일자리는 위태로워지고, 일상에서는 수모를 당해야 할 테니까.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이대녀도 남들과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유권자다. 그러니 침묵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니. 지표를 봐라.

 

성평등한 노동, 새판을 짜야 한다
김용남 전국여성노조 정책국장
 

▲김용남 전국여성노조 정책국장
▲김용남 전국여성노조 정책국장

꼼꼼히 정책을 비교해 가며 어떤 후보가 나을지 평가조차 하기 싫은 선거판이다. 여가부 폐지가 청년을 위한 공약에 들어가 있는 ‘백래시’(반동)야 말할 것도 없고, 당선 후 지켜질지도 모를 여성정책의 소소함, 여성노동자에 대한 공약 실종을 보며 주권자의 절반이자 코로나로 가장 많은 피해를 겪은 여성노동자들은 다시 한번 절망을 느낀다.

정책실종보다 큰 문제는 관점이다. 이 땅의 주류정치가 여성노동자를,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약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여성노동자 중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비율, 필수노동자라 칭해지며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온 몸으로 사회를 유지해 온 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는 3040 여성노동자의 취업률, 채용부터 차별받는 청년여성. 이들에게 20대 대선은 어떤 희망을 주고 있는가.

코로나 이후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인가, 같은 위기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지한 논의가 오가야 할 이번 선거는 또 다시 주권자의 절반인 여성·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채 진행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줄 알았던 수구세력의 망령이 되살아오고 여전히 경제만을 외치는 후보를 보며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 온 정치를 넘어 제대로 된 여성의 정치, 노동자 정치가 새로 시작돼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새판을 짜야 한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지만 이번만이 문제가 아니다. 언제는 정책대결이 넘쳐서 더 나은 정책을 보고 투표했던가. 다른 정치가 필요하다. 여성노동자가 줄기차게 문제제기하고 바꿔 온 성평등한 노동은 부분적인 여성정책·노동정책 몇 가지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경제성장만 외치는 저들에 맞서 우리는 나를 돌보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돌봄중심 사회, 여성과 자연을 착취하지 않고 필요에 의해 생산하는 탈성장 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성장과 이윤을 중심으로 하는 현재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성별 임금격차 없는 사회, 혐오와 차별 없는 사회, 여성이 안전한 사회, 누군가에 대한 착취에 기대지 않는 사회는 불가능하다.

 

역대급 백래시 대선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수식어가 유행처럼 떠돈다. 그러나 나는 이번 대선을 ‘역대급 백래시 대선’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공정을 외치며 당대표 출사표를 던졌고 2030 남성들의 지지와 입당이 이어졌다. 이듬해 9월 그는 당대표에 당선됐다. 인천국제공항사·국민건강보험공단 비정규직 투쟁 등에서 등장한 ‘정규직 되고 싶으면 시험 보라’는 소위 공정담론이 노동에 대한 백래시를 가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TV 광고를 통해 노골적으로 그들의 전략을 드러냈다. 면접에 낙방한 남성 면접자 옆에 웃고 있는 여성, 그리고 띄워지는 자막이 ‘무너진 공정과 상식’이었다. 본선거 전부터 ‘주 120시간 노동’ 같은 노동에 대한 백래시로 한창 이슈몰이하던 그는 이제 타깃을 바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여가부 폐지’ 등을 내세우며 시민의 절반인 여성들의 존재를 외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6일을 남기고서야 ‘이재명으로 마음 돌린 2030여성들의지지 선언’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하며 여성 청년층의 마음을 공략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일 대선후보 3차 토론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선본 내의 2차 가해자에 대한 파악과 조치를 묻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질문에는 책임을 회피하기만 했다. 토론 시작 전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권력형 성폭력과 2차 가해에 대해 사과했지만, 정작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에는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민주당의 청년여성 민심잡기 행보는 그럴싸한 정치쇼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이대남이라 불리는 세대의 억울한 정서를 자극하며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을 볼모잡아 하는 총체적 백래쉬 선거는 정치를 더욱 우습게 만들 뿐이다.

한국 사회와 같은 극명한 양당제 사회에서 혐오를 전략으로 택한 후보를 두고 다른 후보가 좀 더 괜찮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필요할 때 적절히 청년을 사용하고 호명하는 것처럼, 필요할 때 적절히 약자를 사용하고 호명한다. 한쪽이 혐오의 언어로 정치하고 한 명은 선언만 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군다. 그래서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남은 기간이라도 대선후보들이 혐오와 배제가 아닌 평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치행보를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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