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4년 전 이맘때, 새벽 6시 서울지하철 여의도역 3번 출구. 청년유니온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캠페인에 대한 안내를 봤다. 오후 6시도 아니고 새벽 6시에 캠페인을 한다니! 어떤 취지의 활동인가 보다도 그 새벽에 청년유니온 활동가와 조합원들이 고생하는데 나 혼자 따뜻한 방에서 자고 있는 게 괜히 마음이 불편해져서 캠페인에 참여했다. 끝나고 나서도 으레 말하는 보람, 뿌듯함은 느꼈을지 몰라도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청년유니온 활동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새벽 6시 여의도가 떠오른다.

민주화운동도, 등록금운동도 겪어 보지 못한 90년대생에게 ‘운동’이라는 것은 너무나 낯설다. 청년유니온 활동이 노동운동이라는 걸 위원장 임기를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자각했던 것 같다. 여기저기 연대회의와 기자회견에 가며 발언하고 듣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노동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어느 회사 생활이 다 그렇겠지만 적어도 매뉴얼이나 직무교육 같은 최소한의 교육은 마련돼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역사라는 게 워낙 방대하고 청년유니온 운동의 방식은 상황에 따라 케바케(case by case,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뜻)로 대응 방식이 달라진다. 이제 막 활동을 하게 된 신입활동가에게 노동운동이 뭔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 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지도 않았다.

운동이니 정치니 하며 말하는 것들을 알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청년유니온이 그동안 해 왔던 대로, 청년유니온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청년노동자의 일상을 눈여겨보고 대변되지 않는 노동의 영역을 드러내고 문제해결을 위해 제도 개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드러내며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이들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주 15시간 미만의 쪼개기 고용으로 주휴수당을 받지 못해 최저임금조차 차별받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실태를 조사하고 쪼개기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더 취약해진 청년노동자의 삶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실태조사와 인터뷰를 하고 글로 영상으로 담았다.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노동조합이 뭔지도 잘 몰랐던 사람이, 지금은 청년노동운동에 대해 강의하고 청년 노동정책을 제안하고 있고, 5명 미만 사업장 차별 해소를 위한 기자회견에 나선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너무나 의미 있는 일이었고,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이었다.

위원장 임기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이제는 나이 앞자리도 바뀐지라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영화 <노회찬 6411> 시민초청 GV에 대담자로 섭외돼 영화를 봤을 때다. 행사 시작 전에 고민이 꽤 많았다. 노회찬이라는 인물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진보정치를 내걸었던 정당들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료 활동가들이 노회찬 의원을 종종 회상하고 진보정당들이 겪었던 풍파들을 곁다리로 듣기만 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진보무슨당, 어떤어떤진보당 이런 내용들도 너무나 복잡했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이 국회에 처음 들어가는 드라마틱한 과정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했을 때는 뭉클하기도 하고 마음 한편이 아리기도 했다. 선거의 승패 여부가 인상 깊었던 것이 아니었다. 노동과 시민, 정치를 대하는 그의 우직한 태도가 질문으로 돌아왔다.

‘노동운동이 뭔데?’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데?’ 어쩌면 이런 질문을 해 줄, 그리고 답이 돼 줄 무언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지금과 같은 길을 가려 한다면 꼭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한 사람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할 활동가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뭡니까?’ 임기를 마치고도 당분간 이어 갈 질문이다.

돌이켜보면 조합원과 만나고 여러 단체의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이 질문에 고민할 수 있게 만든 토양이었다. 그 과정에 뜻을 같이해 준 조합원분들과 청년유니온을 지지하며 동행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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