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최근 고용노동부가 행정예고한 근골격계질환의 ‘추정의 원칙’ 확대 적용을 골자로 한 고시 개정안이 규제심사 대상이 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경영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직업병 심의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직업병 심의에서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자 하는 취지와 객관적 사실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심사 기간 획기적 단축, 심사 효율성도 높여

현재 신청되는 모든 근골격계질환은 노사가 추천한 전문가로 구성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 인정 여부가 결정된다. 그런데 최종 심의를 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바로 재해자가 수행한 작업의 위험성 평가를 위한 현장 재해조사 과정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 너무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접수에서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여 기간이 걸린다. 2020년 기준으로 근골격계질환 처리 기간이 평균 4개월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비중이 있는 기간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현장 재해조사는 동일한 질병과 동일한 작업내용이라 하더라도 똑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건설현장에서 ‘형틀목공’ 작업을 20년 동안 수행한 노동자가 어깨 부위에 발생한 질환을 산재로 신청을 했다고 가정하자. 형틀 목공은 흔히 거푸집으로 알려진 갱폼을 설치·보강·철거하는 작업으로 노동강도가 매우 높다. 20킬로그램 내외의 중량물을 1일 수톤 이상 취급하며, 팔을 90도 이상 들어 올리는 등의 부적절한 작업자세가 문제 되는 작업이다. 이와 같은 위험요인 특성은 그 어떤 전문가가 조사한들 어깨 부위의 작업부담은 ‘매우 높음’으로 평가되는 작업이다. 그런데도 현재의 직업병 심의 절차상 현장 조사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추정의 원칙은 바로 이처럼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작업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는 다빈도 질병과 작업에 대해 일정 기간 이상 작업경력이 인정된다면 현장 재해조사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질병판정위로 넘겨 업무 관련성 여부를 심의하자는 제도다. 따라서 심사 기간 단축과 그에 따른 업무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제도다.

직업병 심의의 공정성 강화

추정의 원칙을 반대하는 경영계 주장 중의 하나는 직업병 심의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면 오히려 공정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앞에서 예를 든 ‘형틀목공’ 사례를 보면 심사자에 따라 직업병 인정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형틀목공의 작업 현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 때문이다. 만약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오히려 심사자에 따라 판정 결과가 달라지는 비공정성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또한 경영계에서는 추정의 원칙 기준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고시 개정안은 그동안 3년여에 걸쳐 3개의 대학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도출된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마련된 것이다. 또한 미국·프랑스·덴마크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 심의 과정에서의 보편적인 제도다.

근골격계질환 치료와 재발률 낮춰

또 다른 추정의 원칙 도입 목적은 재해자의 조기 치료와 직장 조기 복귀다. 근골격계질환의 조기 치료는 질병의 악화를 방지하고, 치료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치료 기간이 단축되면 원직장 복귀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조기 치료와 조기 복귀 등 적절한 관리가 제때 이뤄지면 재발률이 8%에 그친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재발률이 22%로 3배 가까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조사 과정 때문에 한 달 이상 심의가 지연되면 환자는 그만큼 치료 시기가 늦어지고 그에 따라 직장 복귀도 늦어지고 결국 재발률도 높아지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 적절한 보상이 늦어지면서 재해자의 생계 부담도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직업병 심의의 획기적인 변화와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는 추정의 원칙은 당연히 도입돼야 하고 나아가 더 확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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