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매일 들리던 누군가의 부고가 오히려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더 선정적이다. 그렇다 보니 관심사가 온통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느냐, 마느냐에 있는 것 같기도 할 정도다. 마치 사고가 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중대재해처벌법 1호가 될 것인가?’ ‘적용 여부 관심’ 같은 언론보도가 즐비하다. 과연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 누군가의 고통을 더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은 아닐 터.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기업과 정부의 의무와 역할은 무엇인지, 노동자의 권리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 아니라(원래도 주요 위치를 점했던 것이 아니지만), 더욱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필자가 속해있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너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상을 함께 그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얼마 있으면 치뤄질 대통령 선거에 나선 각 정당 후보들에게도 관련 요구안을 정리해 발송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싸고 찬반의 대립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에 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예방의 정착을 목표로 이제 그 길을 같이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방이 현장에서 실현되려면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이 권리’라는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권리가 실제로 구현되고 확장·정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기대를 조심스레 걸어 본다. 특히 기업의 의무 이행에 대해 관리·감독하는 것은 물론 일하는 사람의 안전·보건영역의 권리에 있어서만큼은 배타적 권리의 옹호자로서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안전보건행정기관의 형태로 ‘산업안전보건청’을 제시한 바 있다. 출범할 새 정부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구상에 기반해 안전보건행정기관의 역할과 청사진을 구체화하기 위해 각계의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일하는 사람의 안전할 권리, 건강할 권리의 배타적 옹호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놓쳐 왔던 일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를 포함한 정부의 각 주무부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각종 해설서를 쏟아냈다. 법의 목적과 취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해석, 이를 위해 기업 차원에서 실무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 등을 담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아쉬움은 해설서 주요 타깃층이 기업 혹은 기업의 경영책임자(혹은 공공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장)로 한정돼 있었다는 점이다. 국민의 다수가 일터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지만 정작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권리로서 이를 안내하는 해설서는 없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정부의 안전보건행정기관이 해야 할 역할은 ‘일하는 사람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미 기업 대상의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의 면면은 ‘종사자’ ‘작업자’ 등으로 표현은 다르지만 핵심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 자료를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 맞춰 어떤 것이 권리인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재가공해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중대산업재해 해설서’에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에 대한 점검’을 시행해야 한다고 해설한다. 이를 위해 위험성평가를 시행하고, 그에 대한 점검을 넘어 △작업방식의 변경 △유해·위험물질 대체 등 제거 및 통제 △제거나 통제가 되지 않을 때에는 작업중지 △노동자 개인에게 적절한 보호장구를 지급 등 조치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노동자의 입장에서 해석해 ‘△유해·위험한 작업방식은 변경해야 합니다. 의견을 적극 개진할 수 있습니다 △유해·위험물질을 제거·대체하거나 통제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작업을 중지하고 거부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보호장구가 지급되지 않는다면 작업을 거부하고, 즉각 작업중지를 해야 합니다’와 같이 안내해야 한다.

아니, 여기에서만 그쳐서도 안 되고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만약 회사가 위와 같은 상황에서 계속 작업강행을 요청할 경우에는 관할 지방노동관서에 연락을 취해 작업강행 여부에 대한 판단 및 후속조치를 요구하시기 바랍니다’와 같이 권리 행사를 돕겠다는 의지를 적극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개인노동자의 권리가 제약당할 경우 행정력이 그 든든한 뒷받침이 돼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시행까지의 소모적인 논란을 이제는 넘어설 때가 됐다. 중대대해처벌법이 법을 지켜 노동자들의 중대재해를 줄이자는 본연의 취지보다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법리적 논란거리를 만드는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

예방 정착이 필수이며, 그 시작이 노동자의 참여와 권리 보장에서 비롯될 수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지금 해야 할 것은 그 길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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