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연대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을 도입한 지 4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이사와 감사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등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계 ‘현산·이마트·KT에 주주권 행사’ 촉구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에 대한 우려가 정당한가’를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노동계는 현대산업개발과 이마트·KT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국민연금에 촉구했다. 현대산업개발 주가는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1일 2만5천750원에서 이날 1만5천600원으로 폭락했다. 홍순관 건설산업연맹 수석부위원장은 “국민연금은 큰 손실을 입은 소액주주를 대표해서 현대산업개발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민정 마트노조 위원장은 “이른바 ‘멸공 발언’으로 오너리스크 논란을 일으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미등기임원임에도 등기임원보다 많은 보수를 받고 있다”며 “이마트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이사회를 통해 정 부회장의 행보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경영전문이사 선임을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17일 KT 경영진이 ‘상품권깡’으로 조성한 비자금 4억여원을 국회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으로 제공한 사건과 관련해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과징금 630만달러(약 75억원)를 부과했다. 이해관 KT새노조 대변인은 “한국 기업경영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심각한 일이 벌어졌지만 KT 이사회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발동 ‘기업 벌주기’ 아냐”

국민연금은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한 이후 단 한 건의 주주대표소송도 제기하지 않았다.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외에는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며 “대표소송을 제기한 적도 없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사 등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기업의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했음이 관련 소송의 판결에서 확정됐는지 △이사 등의 위법행위로 인해 기업에 발생한 손해액이 관련 소송의 판결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거나 객관적으로 산출 가능한지 등을 고려해 주주대표소송 제기 여부를 판단한다. 김규식 변호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는 “기업가치나 주주가치 훼손이 발생할 우려가 큰 경우에도 확정판결이 없으면 사실상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국민연금은 반드시 소 제기 절차와 요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좌담회에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발동이 경영권 간섭이라는 재계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김종보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주주대표소송의 본질적 기능은 회사 운영의 건정성 확보”라며 “회사에 손해를 입힌 이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은 ‘기업 벌주기’가 아니라 기업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횡령·배임을 저지른 이사에 대해 회사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해외 연기금의 경우 투자 기업의 가치를 보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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