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아나운서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며 ‘방송사 정규직’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행정법원이 아닌 민사법원 항소심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고법 1민사부(재판장 전지원 부장판사)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KBS 강릉방송국과 춘천방송국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아나운서 A씨가 KBS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10월 KBS 강릉방송국에서 기상캐스터로 입사해 TV·라디오 날씨방송을 하다 2016년 9월 내부테스트와 교육을 거쳐 아나운서 업무에 투입돼 TV·라디오 뉴스와 음악프로그램을 맡았다. 일손이 부족한 춘천방송국에서 주말당직자 파견을 요청해 2018년 6월부터는 평일에 강릉, 주말엔 춘천으로 출근했다. 2018년 12월부터 춘천방송국과 계약서를 새로 작성해 춘천으로 출근했고, 저녁 9시 메인뉴스를 담당했다. A씨는 프로그램 진행뿐만 아니라 방송편성부장의 지시에 따라 개국기념식·종무식에서 사회를 보고 KBS가 기획한 교육행사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9년 7월 신입사원 채용을 이유로 A씨는 아나운서 업무에서 배제됐다. A씨는 같은해 10월 KBS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법 13민사부(재판장 안병욱 부장판사)는 “계약에 업무상 지휘·감독에 관한 규정이 없고 A씨가 뉴스 등 방송을 진행하는 데 KBS의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며 회사측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심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A씨가 KBS 근로자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KBS에 의해 배정된 방송편성표에 따라 KBS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고 정규직 아나운서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고, 종속적 관계에 있는 아사운서 직원이 아니라면 하지 않을 업무도 상당 부분 수행해 왔다”며 “A씨는 KBS의 근로자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KBS는 이 사건 계약을 거듭 갱신하면서 A씨를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용하였으므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봐야 한다”며 “신규인력을 채용함으로써 A씨를 업무에서 배제해 사실상 해고했는데 이 사건 해고는 부당해고로서 무효”라고 밝혔다.

A씨를 대리한 류재율 변호사(법무법인 중심)는 “아나운서 직군의 경우 방송특성상 정규직과 프리랜서 업무가 다르지 않고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도 업무 내용과 형식이 구분된다며 프리랜서로 채용해 온 방송사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라며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넘어, 계약 갱신으로 전체 일한 기간이 2년이 지난 만큼 정규직 직원과 같은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KBS측은 판결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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