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재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차장

2019년 8월 무더운 여름, 폭염 속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청소노동자가 있던 휴게실은 에어컨도 창문도 없는 한 평 남짓한 공간으로 휴게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후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열악한 휴게실로 밝혀지면서 사업주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다.

근로기준법 5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중에 휴게시간을 주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휴게시설 설치에 관한 별도의 의무 조항은 없다. 노동자가 쉴 시간은 있어도, 쉴 공간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2021년 8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사업주에게 노동자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설치하라는 내용으로 올해 8월부터 시행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조금이나마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업장 규모와 사업의 종류에 따라 여러 제약조건을 걸었다. 정작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됐고, 법 개정 취지는 훼손되고 있다.

전 사업장 대상 휴게시설 설치해야

정부는 하위법령 마련 회의에서 업종과 관계없이 휴게시설 설치 의무 사업장을 상시노동자 20명 이상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0년 기준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사업장은 전체 271만9천308곳이며, 이 중 20명 이상 사업장은 5.9%에 불과하다. 정부안대로 하위법령이 제정될 경우 전체 사업장의 5.9%에만 휴게시설 설치의무가 주어진다. 대부분 사업주는 휴게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정부는 법 대상에서 적용 제외되는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안전보건규칙 역시 사업주에게 휴게시설을 갖추도록 권고하는 사항일 뿐 의무 조항은 아니며, 사업주가 휴게시설을 제공하지 않아도 제재조치가 없어 실효성이 전혀 없다.

정부는 또한 휴게시설 설치 필수 직종을 규정하면서도 상시노동자수 제한을 두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휴게시설 설치 필수 직종이라는 것은 상시노동자수와 관계없이 휴게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모순적 하위법령 마련을 중단하고 사업장 규모와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라.

1인당 단위면적 규정 마련 필요하다

정부는 휴게시설에 대한 최소면적만 규정하고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적정한 면적과 수를 설치하도록 하는 방안을 시행규칙 별표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 1인당 휴게 면적에 관한 기존 논의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정부안은 법을 사문화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업주는 규정에 따라 휴게시설에 대한 최소면적만을 확보하는 면피성 대응을 할 가능성이 크고,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 노사갈등을 유발하는 매개체가 될 소지도 다분하다. 휴게시설 동시 사용 인원을 고려해 1인당 단위면적 기준을 하위법령에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가 마련하려는 하위법령 내용은 일하는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와 건강을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박탈감을 안겨줄 것이다. 취약계층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와 건강 보호를 위해 본법이 개정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기본적 권리를 누리고 건강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온전한 하위법령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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