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왼쪽 세 번째)이 9일 오전 11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일반교통방해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피고인들의 행위는 법원이 증거조사를 한 결과 무죄로 판단할 부분이 없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비판하고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한 결과는 실형이었다. 선고는 단 5분여 만에 끝났다. 법원은 정부기관에서 불법파견 등을 비판하는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이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장은 “법정 구속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나머지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됐다.

비정규직 17명 벌금형·징역형 선고
제도 문제 수긍한 법원 “실정법 지켜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선일 부장판사)는 9일 일반교통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지회장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다른 조합원 16명 중 4명은 징역 6월~1년6월과 집행유예 1년~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나머지는 벌금 100만~20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먼저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은 공감했다. 재판부는 “(불법파견·비정규직 문제는) 제도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법원도 피고인들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실정법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대외적으로 주장을 제시하는 방법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지는 실정법의 문제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순 없다”며 “관공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런 때에도 청사 관리책임자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방법으로 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정규 노동자 17명은 2018년 재벌 총수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이듬해 청와대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 및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김 전 지회장은 이 과정에서 기습시위를 펼치다가 2019년 1월 경찰에 체포됐다. 또 현대기아차·한국지엠 등의 불법파견 판결에 따라 시정명령을 하라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등에서 농성을 했다.

검찰은 일반교통방해·공동주거침입·공동퇴거불응 등 다수 혐의를 적용해 지난해 11월30일 이들에게 총 21년2개월을 구형해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검찰이 구형량을 변경하면서 지난해 10월19일 1차 결심공판에 이어 이례적으로 두 차례 구형이 진행됐다. 일부 죄명이 바뀌며 애초 구형량보다 1년4개월이 줄었다. 당시 결심공판에서 김 전 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검찰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어떤 중죄를 저지른 것인가”라고 호소했다.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사진 가운데)이 9일 오전 11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일반교통방해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사진 가운데)이 9일 오전 11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일반교통방해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홍준표 기자>

김수억 “상식과 정의는 죽었다”
“악착같은 구형, 법원 그대로 따라”

김 전 지회장은 이날 선고가 끝난 직후에도 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그는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진행된 ‘비정규직이제그만 1100만 공동투쟁’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상식과 정의는 죽었다”고 성토했다. 김 전 지회장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비정규직 제로정책은 거짓이었다”며 “비정규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법대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절박한 목소리는 갇히고 말았고, 오늘 이렇게 중죄를 받게 됐다”고 강조했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지원한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검찰이 구구절절 공소장을 변경해 가며 20년이 넘는 악착같은 구형을 했고, 법원 또한 그대로 선고했다”며 “비정규직 요구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정반대의 모순된 판결을 했다”고 비판했다.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이날 선고 전까지 검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과 1인 시위 등을 했다.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선고 전날(8일)까지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매일 오전 한 시간 동안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한편 이날 법정에는 비정규 노동자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수십여명이 왔으나 코로나19로 방청석 배부가 적었던 탓에 대부분이 법정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일부 방청객이 재판장에게 항의하자 재판부는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방청석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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