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2022년 새해가 됐지만, 달라진 것을 체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일터에서 일하다가 희생된(정확하게는 죽음에 이른) 이들의 소식이 언론보도를 통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고가 지난해 11월5일에 있었지만, 사망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던 고 김다운 전기노동자의 현실은 비정하다. 사고 이후 19일간 투병하다가 안타깝게 사망에 이르렀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던 현실. 유족의 억울함이 세상에 드러나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왜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를 언론이 파헤치고 집중 조명하는 실태. 그러자 결국 떠밀리듯 원청인 한국전력공사가 한 해를 넘긴 올해 1월9일에 이르러서야 국민 앞에 사과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그럼에도 책임 소재에 대해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원청)이 아니라 발주처일 뿐이라고 항변하는 촌극은 이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다루는 냉혹함, 그 자체가 아닐까 한다.

중대재해는 ‘산업재해 중 사망 등 재해의 정도가 심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고 직후 사경을 헤매게 된 고 김다운님과 같은 중대한 사고는 ‘재해의 정도가 심한 것’으로 마땅히 중대재해에 포함되는 것이 상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 요양을 요하는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과 중대재해처벌법(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발생하는 직업성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재해) 각각은 별도의 규정을 통해 중대재해를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고압전류가 계속 흐르는 상황에 30여분간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채 10미터 상공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고를 당했어도, 고 김다운님의 사고는 사망하기 전까지는 ‘중대재해’가 아니라고 분류된다. 그렇기 때문에(이런 가정을 하는 것이 유족들에게는 매우 죄송스럽지만), 만약 망인이 현재까지도 사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이를 언론이 재조명하는 일도, 사고의 원인을 파헤치는 일도, 그나마 활선작업에 대해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계라고 지적하는 미온적인 대책이라고 할지라도, 한전이 대책을 제출하는 일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시행령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협소한 중대재해 기준을 확대·확장해야 한다고 노동계가 주장한 이유는 그동안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사례들이 중대재해가 아닌 일반재해로 처리될 경우 사업주의 간단한 산재발생 신고로 해당 사고가 갈음되고, 그렇다면 현장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교훈을 찾아보기 힘들다.

크든 작든 노동재해가 발생한다는 것은 일터에서 위험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는 노동자의 신체가 훼손당하거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어진다. 통상적으로 일터에서 노동자와 사업주가 대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특히 노동재해가 발생하는 일터에서는 일상적인 안전·보건관리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위험을 인지한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통로조차 없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노동조합의 조직률도 높지 않으며, 조직된 노동조합의 활동조차 불온시해 온 한국 사회 아닌가. 이런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재해의 정도가 심하지만’ 사망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주가 알아서 산업재해를 보고하고 마무리 짓는 관행은 더 큰 사고, 더 큰 재해를 불러올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예방을 위한 현장 개선에 행정력(정확히는 고용노동부)이 개입할 수 있어야 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020년 11월 대전의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노동자가 설비에 협착돼 사경을 헤매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처음에는 이 사안을 ‘중대재해가 아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등 노동조합의 항의와 문제제기가 거세지자 입장을 바꿔 ‘중대재해’로 이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해당 사고에 대한 개입에만 그치지 않고,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안전·보건진단 명령을 내려 자체적인 안전·보건관리에 철저함을 기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노동조합이 있지만 일상적인 노동자들의 의견이 현장 개선으로 이어지거나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TF를 재가동하는 등 행정력을 발휘했다.

재해 정도가 심하지만, 중대재해가 아닌(?!) 현재의 문제점은 법·제도의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중대재해 규정은 마땅히 확대돼야 한다. 하지만 법·제도의 한계를 핑계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희생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노동자가 사망에 이르지 않았어도 중상자가 발생한 경우라면, 중대재해와 똑같이 보고 행정력을 동원해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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