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직장갑질119

삼성SDI가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받고도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SDI는 2019년 11월 제기된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4개월여 동안 조사했다. 결론은 “신고자의 주장 내용이 일부 사실로 확인되나,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한 근로기준법 시행(2019년 7월16일) 및 당사 취업규칙 개정 전 발생한 사안으로 직장내 괴롭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였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받은 사업주는 조사 기간 동안 피해를 입었거나,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 보호를 위해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실시해야 하지만 이런 조치도 없었다. 결국 괴롭힘은 계속됐고 재해자는 2020년 5월 휴직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10월 해당 노동자 우울증 원인을 직장내 괴롭힘으로 보고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업자’라고 비아냥
들으라는 듯 소리 내 험담”

“제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데, 다른 분과 메신저를 주고 받으며 ‘쟤를 퇴사시켜야 한다. 업무에서 내쫓아야 한다’며 들리게끔 말했어요. 항상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있는지를 살피고요.”

정혜진(가명)씨가 기억하는 괴롭힘의 시작 시점은 2017년 8월께다. 함께 일하는 동료 A씨가 휴직했다가 업무에 복귀하면서다. 휴직 동안 동료의 보건관리자 업무를 넘겨받은 정씨는 8개월 만에 업무가 또다시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

평소 의욕을 가지고 국가 예산 프로젝트에 지원해 예산을 따내고, 직원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회사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는 새로운 시도를 하자 가해자들은 정씨를 ‘업자’라고 비꼬았다. 외부업체 관계자와 일을 했다는 이유로 붙은 별명이다.

주된 가해자 A씨와 B씨는 헐뜯기에 그치지 않고 정씨를 배제한 채 업무를 진행하거나, 부서 회식에서 제외하려 하는 등 따돌림을 계속 이어 갔다. B씨는 노골적으로 ‘언제 퇴사하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8년 2월 정씨는 이같은 사실을 상사에게 알렸지만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상사 C씨는 “담당자에게 조치를 취했다”고 정씨에게 이야기했지만, C씨가 취한 조치는 A·B씨에게 피해자가 어렵사리 모은 증거자료를 전달한 것이다. 그러면서 A·B씨에게 “하기(아래 첨부된) 내용 참조하고, 개인적 메일이나 메신저 등 회사 채널로 (험담을) 하지 마라”며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사안들은 회사 외적 채널(다른 메신저)을 이용하라”고 공지했다.

2018년 3월 당시 공장장은 정씨가 고통을 호소하자 “가해자들을 징계하자”고 제안했지만, 정씨는 마음이 약해져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 대신 다른 부서로 파견 가는 것을 택했다.

그런데 두 달 파견 뒤 복귀한 이후 업무의 잦은 변경 등 ‘불이익 조치’로 보이는 일이 계속됐다고 한다. 그는 “보건관리자로 왔는데, 보건업무를 주지 않고 안전업무를 주로 맡겼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을 다루는 업무는 업무 연속성이 중요해 업무변경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데 1~6개월 단위로 유달리 자주 바뀌었다”고 말했다. 결국 정씨는 2019년 3월 두 달간 휴직했다.

“신고 후 분리조치 요구하자
창고로 쓰인 텅빈 공간 내줘”

정씨가 2019년 11월 회사에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내부 고발자로 몰리면서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같은달 “선임 보건관리직의 보건업무 미부여”로 회사에 과태료 300만원을 처분했다. 간호사 자격증을 보유해 회사 보건관리자로 선임돼 있던 정씨가 2018년 6월께 문제를 제기했던 사유였다. 가해자를 포함한 동료들은 정씨가 노동부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넘겨짚었고 상사 한 명은 “너를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씨는 “잦은 업무 변경은 ‘배운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허위 사실이 회사 전체에 소문이 나면서 버티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회사가 직장내 괴롭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직장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하며 회사에 제출한 자료는 가해자들에게 공유됐다”며 “3~4시간에 걸쳐 직장내 괴롭힘을 진술해도 너무 많은 진술 내용이 생략된 한두 장 분량의 진술서를 주고 사인을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신고 이후 분리조치를 요구하자 회사는 창고로 쓰여 제대로 된 사무실 비품 하나 없는 공간으로 이동을 제안했다.

급기야 회사는 정씨를 대체할 신규 간호사(계약직) 채용공고를 2019년 12월 올렸다. “노동부 점검 결과 대책으로 회사가 고민해 결정한 사안”이라고 상사는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바로 정씨 업무가 보건관리자였기 때문이다. 2016년 정씨는 다른 부서에서 5년 가까이 일했지만, 간호사 자격을 가진 보건관리자가 필요해 부서이동을 권유받았고, 그때부터 계속 보건관리자로 선임돼 왔다. 정씨는 “보건관리자로 일하기 위해 4년 동안 미수행한 간호사 보수교육을 모두 이수하고, 2018년 3월부터는 관련 학과로 대학원까지 진학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직장내 괴롭힘에 관한 회사 조사가 한창이던 2020년 2월 보건관리직에서 해임됐고, 노동부에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하자 회사가 불리한 처우를 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회사는 2020년 4월 “피신고자 A 및 B와 관련해 신고자 주장 내용이 일부 사실로 확인이 되나,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한 근로기준법 시행 및 당사 취업규칙 개정 이전에 발생한 사안으로 직장내 괴롭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관리자 C·D씨에 대해서는 “조직관리가 미흡했던 점은 있으나 가해자에게 경고조치를 하는 등 단순 방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결론지었다.

정씨가 이후 산재신청을 할 당시 동료들은 사실확인서를 손수 작성해 “정씨의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대부분 안전 전담자와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 사안은 정씨의 개인적인 문제로 보일 수 있으나, 폐쇄적인 조직문화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 울산사업장의 부조리와 악·폐습은 다른 사업장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정씨도 그런 부조리의 희생자 중 한 명”이라며 정씨를 옹호했다.
 

정혜진(가명)씨 제공
▲ 피해자가 직장내 괴롭힘 신고 이후 분리조치를 요구하자 회사는 창고로 쓰던 공간으로 이동을 제안했다. <정혜진(가명)씨 제공>

근로복지공단, 재심 끝 산재 인정
회사 “노동부 조사 결과 법 위반 없음 종결”

정혜진씨는 2020년 5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자 병가를 신청했다고 한다. 정씨는 “이분들(복수의 가해자)과 같이 일할 수 없어서 분리조치를 해 달라고 했는데 되지 않았다”며 “원래 ‘아무개 프로’라고 통상 불리지만, ‘야’ ‘너’ 같은 반말과 고성도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그해 6월 정씨가 보건관리자직에서 해임됐을 당시 가해자 A씨도 함께 해임된 점과 신규채용자가 정씨보다 임상경험이 많아 ‘자신이 더 보건관리자에 적합하다’는 정씨의 주장이 반드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근거로 법 위반 사항이 없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정씨 대신 신규채용돼 보건관리업무를 수행한 김현정(가명)는 <매일노동뉴스>에 “제가 맡은 업무는 사업장 위생점검과 코로나19 감염 대응 업무 등을 주로 했다”며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수행한 업무는 거의 없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정씨를 보건관리자직에서 해임한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느꼈다”며 “정씨가 담당하던 보건관리업무도 누가 대신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백상태로 남아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는 재해자의 ‘기타 우울증 에피소드’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한 차례 승인 거절 이후 요양불승인 처분취소 재심사를 요구한 끝에 나온 결론이다. 삼성SDI는 산재가 발생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제출해야 하는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하지 않다가 <매일노동뉴스> 취재가 시작된 직후인 10일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했다.

김재현 공인노무사(노동법률사무소 호연)는 “이번 사건의 경우 괴롭힘을 신고해도 은폐하기 바빴다.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니 재해자의 상태가 악화한 것”이라며 “직장내 괴롭힘이 개인 간의 문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사업장 내 조직문화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노무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근로기준법(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각 법의 취지가 있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바로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삼성SDI쪽은 “노동부 조사 결과 법 위반 없음으로 종결된 건으로 알고 있다”며 “내용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밝혔다. 후속조치 계획에 대해서는 “일단 지금 휴직 상태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며 “다만 일반적으로 산재의 경우 휴직 이후 복귀 시점에 면담이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당시 ‘혐의 없음’으로 종결처분을 내린 근로감독관은 “당시 직장내 괴롭힘을 다투는 게 아니어서 직장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며 “직장내 괴롭힘 신고 후 불리한 처우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다투는 것이기 때문에 법령상 나와 있는 부분을 가지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노동부 결론이 ‘직장내 괴롭힘이 없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A씨와 B씨의 답변을 듣기 위해 각각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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