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섭(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연일 언론보도가 넘쳐난다. 대부분이 기업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한 방편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재해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과 관리라는 이 법의 취지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운전석에 앉으면 안전띠를 맨다. 이제는 단속에 걸릴까 봐 매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운전할 땐 습관처럼 매는 것이다.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엄포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안전띠 착용 의무는 1980년 고속도로 운전자에게 처음으로 부여됐다. 그 후 여러 단계를 거쳐 38년이 지난 2018년에 이르러서야 모든 도로에서 전 좌석 안전띠를 매도록 의무화했다.

2001년 4월에 시작된 안전띠 착용 캠페인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1차는 경찰청의 경찰관, 2차는 국회 및 정부중앙청사 공무원, 그리고 3차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일반 국민이 알고 대처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줬고 그 다음에 본격적인 단속이 시작됐다.

단속은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처벌을 무리하게 강화하거나 요란스럽지 않았다. 국민의 눈높이와 적응도를 봐 가면서 조이기도 하고 늦추기도 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안전띠 미착용 범칙금은 3만원이다.

규제도 유연하다. 부상·질병·장애 또는 임신 등으로, 신장·비만, 그 밖의 신체의 상태에 의해 좌석안전띠 착용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자는 매지 않아도 된다. 산업현장에서 ‘물체가 떨어지거나 날아올 위험 또는 노동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작업’을 할 때는 무조건 안전모를 쓰도록 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개정해 안전보건 조치 소홀로 사망사고를 일으킨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형량을 대폭 강화했다. 2021년에는 법 위반으로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다. 그것도 모자라 건설안전특별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허드슨은 규제단계(Pathological level)는 안전문화단계(safety culture ladder)의 최하위 단계로서 주된 관심사는 규제기관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 단계를 벗어나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갖추는 타산적 단계(calculative level)를 거쳐 안전작업과 관련된 가치체계가 믿음으로 내재화하고, 조직의 모든 접근 시스템이 안전에 기반하는 단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영국 0.5명, 미국 1.2명, 한국 1.4명이다. 2019년 노동자 1만명당 사고 사망자수는 영국 0.03명, 미국 0.37명, 한국 0.46명이다. 영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8배인데 반해 노동자 사고 사망자수는 무려 15.3배다.

우리는 너무 조급한 것은 아닐까. 규제가 안 먹혀들면 더 강한 규제로 막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이제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보다는 만들어진 규제에 시간을 줘야 한다. 문화로 성숙할 수 있도록. * 전문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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