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가핵심기술과 관련 있으면 인체에 유해한 안전보건정보까지 공개를 금지하기 때문에 ‘삼성보호법’이라고도 불린다. 최근에는 기업의 정보감추기를 더욱 강화할 우려가 있는 국가핵심전략산업법안이 관련 상임위를 통과했다. 12개 노동·안전보건·시민단체로 구성된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과 전략산업법 제정 중단을 요구하며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임자운 변호사(반올림 활동가)
▲ 임자운 변호사(반올림 활동가)

2009년 작성된 ‘서울대 산학협력단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해 온 화학제품에서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보고서’를 통해서는 국내 반도체 생산 공장에서 벤젠·포름알데히드 같은 발암물질이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3년 고용노동부 ‘특별감독 보고서’와 ‘안전보건진단 보고서’를 통해서는 삼성 반도체 공장의 화학물질 관리 전반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이미 그 공장에서 많은 직업병 피해 제보가 나왔을 때였다. 노동자들은 직업병으로 의심되는 건강 문제를 드러내며 공장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리려 했지만, 회사와 정부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자료들이 드러나며 그 공장의 작업환경 문제는 더이상 무시될 수 없었다.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이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산업재해’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고 황유미씨의 백혈병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을 시작으로, 반도체ㆍLCD 공장 등에서 일했던 80여명의 노동자가 20여개 질병으로 산업재해 피해를 인정받았다. 또한 공공기관과 민간 연구자들이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문제를 더 깊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 역학조사도 실시됐다.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더 많은 직업병 피해사례와 더 많은 작업환경 문제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2007년 고 황유미씨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시작된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2019년 8월, 국회가 놀라운 법을 만들었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을 개정해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자료들이 더 이상 공개될 수 없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라는 이유로 모든 자료가 은폐되도록 한 것이다(산업기술보호법 9조의2). 심지어 공익적 목적으로 공장의 작업환경 문제를 알리는 행위조차 무거운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이 되도록 했다. 그러한 행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정보수사기관의 사전 조치가 가능해졌다(산업기술보호법 14조8호, 15조, 22조의2, 36조4항).

그리고 2021년 12월, 국회는 또 다른 ‘반도체 특별법’(국가핵심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 법이 새로 도입하려는 ‘국가핵심전략기술’ 제도는 산업기술보호법에 만들어진 독소조항들을 전부 끌어안고 있다(특별법 11조7항). 은폐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를 더 넓히고, 공익 목적의 자료 공개를 더 무겁게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이미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거대 여당이 당론으로 채택해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법사위만 넘어가면 본회의 통과는 어렵지 않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아주 느리게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던 세상이 빠르게 역주행하는 모양새다. 산업기술보호법이 바뀌지 않은 채 ‘반도체 특별법’마저 통과된다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공장의 작업환경 문제를 손쉽게 은폐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1급 발암물질을 찾아낸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 보고서’와 같은 자료는 더 이상 세상에 알려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반도체 공장 전체를 덮어 버리는 더 크고 두꺼운 장막이 생기는 것이다. 그 속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 심각한 질병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 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도 꽁꽁 감춰질 수 있다.

올해 3월이면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고 황유미씨 15주기다. 하늘에 있는 유미씨가 그동안 뭐가 얼마나 바뀌었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당신의 죽음은 ‘산업재해’였음이 분명하게 밝혀졌고, 당신 동료들의 삶을 무너뜨린 온갖 질병들도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문제가 만들어 낸 ‘직업병’이었음이 확인됐지만, 우리는 그 공장의 문제를 더 이상은 알 수 없게 됐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더불어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말해야겠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닥치고 지원’을 외쳐 대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문제는 여전히 관심 밖이라고. 그 분노스러운 현실만큼은 15년이 지나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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