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8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가핵심기술과 관련 있으면 인체에 유해한 안전보건정보까지 공개를 금지하기 때문에 ‘삼성보호법’이라고도 불린다. 최근에는 기업의 정보감추기를 더욱 강화할 우려가 있는 국가핵심전략산업법안이 관련 상임위를 통과했다. 12개 노동·안전보건·시민단체로 구성된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과 전략산업법 제정 중단을 요구하며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은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해 오랜 기간 싸워야 했습니다. 산재를 신청하면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지만, 피해자에겐 자료가 없었습니다. 작업환경 위험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했습니다. 성분을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화학약품 모델명, 작업할 때 늘 맡았던 기분 나쁜 냄새, 방진복을 적시고 피부를 시원하게 했던 유기용제, 설비를 해체하면 날리던 하얀 가루, 오븐을 열면 확 끼쳐 오는 열기, 방사선을 쓴다던 설비, 화학약품 사고로 대피했던 기억, 그 사고장소로 들어가던 엔지니어, 잦은 병치레와 늘 피곤했던 몸. 피해노동자들에겐 이런 조각난 기억들이 전부였습니다.

때문에 반올림은 삼성 공장의 작업환경을 측정한 보고서를 요구했지만, 영업비밀이라며 매번 거부당했습니다. 보고서를 받기 위해 별도의 소송까지 해야 했고 2018년 2월, 1심을 뒤집은 항소심은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판결문을 통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보고서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근로자들의 안전 및 보건권의 보장, 지역 주민들의 생명·건강 가치를 위해 중요하다.”

작업환경보고서가 영업비밀도 아니지만, 영업비밀이라 하더라도 생명·건강 정보이기 때문에 공개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 판결로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은 비로소 온전한 작업환경보고서를 받아 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판결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하자, 삼성은 곧바로 작업환경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임을 내세웁니다. 그러자 산자부가 삼성의 주장을 인정해 줬고, 행정심판위원회가 고용노동부의 보고서 공개를 막아 버렸습니다. 그 뒤로 피해자들은 공정과 화학물질명, 사용량, 사용용도, 측정한 위치 등 핵심정보들이 가려진 누더기 보고서를 받게 됩니다. 다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4월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공정명만 겨우 추가로 공개하게 됐습니다. 국가핵심기술을 공개하지 못하게 막은 산업기술보호법이 시행된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의 악영향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피해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면,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에 의뢰해 질병과 작업환경의 관련성을 조사한 내용을 담은 역학조사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이 시행된 뒤 근로복지공단은 이 역학조사보고서 공개지침을 개정해 피해자들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 지침은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만 비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업비밀도 비공개하도록 해 지난 2018년 2월 판결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국가핵심기술이나 영업비밀 여부를 사실상 사업주의 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안전과 직결된 내용의 공개 여부를 아예 삼성전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더 있습니다. 실제 역학조사보고서를 공개할 때 이 지침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아 무분별한 비공개가 남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개를 막고 처벌까지 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이 정보공개를 위축시키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송에서 공개하도록 판결이 난 정보도, 논문과 서적에 이미 공개된 클린룸의 개략적인 구조도, 기술과 무관한 청소노동자가 노출된 유해환경정보도, 20년 전 애니콜 휴대폰 사업장의 정보도 모두 비공개됐습니다. 심지어 산재신청 노동자가 작성했던 근무시간도 가렸고, 최근 들어서는 유해요인 검토 내용 전체를 비공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의 악영향이 근로복지공단 보고서 공개지침으로 한 번 더 악화되고, 실제 담당자가 개별 보고서 공개 여부를 결정할 때 또 한 번 악화되는 것입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을 시행한 지 2년도 안 돼 노동자들의 알권리는 처참하게 훼손됐습니다. ‘산업기술보호법 악법조항을 걸러 내지 못해 죄송하고,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했던 더불어민주당은 2년이 넘도록 법 개정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바로잡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개정안에도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송영길 대표 주도로 산업기술보호법 악법조항을 더 강화한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동안전보건 알권리는 병들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권리입니다. 알권리를 훼손하면 사람이 병들고 죽게 됩니다. 산업화를 위해 노동자 목숨도 돌보지 않았던 산재공화국의 어둠을 더는 방치하지 마십시오. 반도체 신화의 제물이 된 노동자들을 더는 희생시키지 마십시오.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악법조항을 폐기하십시오. 약속대로 산업기술보호법을 개정해 훼손된 알권리를 복원해 주십시오. 알권리 훼손은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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