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소망)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그리고 지금처럼 겨울임에도 따뜻한 날과 추운 날이 혼재한 시기에는 어김없이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질병에 관한 상담이 많이 온다. 뇌심혈관질병은 뇌 또는 심장혈관이 막히거나(경색) 터져서(출혈) 발생하는 질병을 말한다. 뇌경색·지주막하출혈·뇌실질내출혈·심근경색증 등이 있다. 근로복지공단 통계에 따르면 2020년에만 1만5천874명이 뇌심혈관질병으로 보험급여를 받았다.

그러나 피재근로자와 그 유족들을 대리해 뇌심혈관질병을 신청하는 대리인의 입장에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해 근로자의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의 목적을 이루기에는 아직까지 가야할 길이 지난함을 느낀다.

이에 3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먼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결과 데이터베이스화를 제안한다.

다양한 직종에서 업무상 과로, 각종 정신적·육체적 업무부담 가중요인, 유해한 환경 등 때문에 뇌심혈관질병이 발생한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완벽하게 동일할 수 없지만, 동종 또는 유사한 직종에 근무하는 자들은 비슷한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동종·유사한 직종의 근로자들에 대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결과가 데이터베이스화된다면, 좀 더 신속하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둘째, 뇌혈관질병 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 지침(제2021-03호, 이하 ‘뇌심혈관질병 지침’)은 뇌심혈관질병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판단근거여야만 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권리구제를 위해 어떠한 경우가 돌발적 사건 또는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인지,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인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인지에 대한 판단기준을 정한 것이 뇌심혈관질병 지침이다.

예를 들어 뇌심혈관질병 지침에 의하면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인지는 발병 전 1주의 업무량이나 업무시간이 발병 전 2주부터 12주 사이의 1주 평균 업무량 또는 업무시간에 비해 30%이상 증가했는지를 주된 기준으로 삼는다. 이때 발병 전 2주부터 12주 사이의 1주 평균 업무시간이 40시간 미만인 경우에는 40시간을 기준으로 적용해 변화량과 비교하라고 돼 있다. 그런데도 해당 판단기준을 고려하지 않고 불인정 의견을 내는 사례가 존재한다.

그러나 뇌심혈관질병 지침에 명확하게 규정된 판단기준의 경우 해당 판단기준을 적용해야 하며, 이를 임의대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기초질병을 이유로 뇌심혈관계질병이 업무상 질병인지 여부를 임의대로 엄격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산재보험의 무과실책임 원칙, 최근 판례 등에서 강조되고 있는 추정의 원칙과 당사자 주의를 감안할 때 기초질병이 있더라도 업무상 부담요인이 명확하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보통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기준은 때론 공허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인한 지주막하출혈로 최초 요양신청을 한 피재근로자가 있다. 피재근로자는 기존질환으로 고혈압을 가지고 있었고, 고혈압 진단 이후 꾸준히 병원내원 및 혈압약을 복용했다. 종전 건강검진에서 뇌동맥류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경우 일부 위원들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되는 기준에 미달하면, 본인의 기존 질환인 뇌동맥류가 파열돼 지주막하출혈이 발생된 것으로 봐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뇌혈관에 아무런 질환이 없는 피재근로자의 뇌혈관이 파열되는 위험보다, 기존 질환으로 뇌동맥류를 가지고 있는 피재근로자가 만성적인 과로와 스트레스, 업무부담 가중요인 등이 촉발요인으로 작용해 개인질환인 뇌동맥류가 자연경과적인 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해 파열될 위험이 더 높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기존 질환이 피재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피재근로자의 만성적인 과로와 스트레스·업무부담 가중요인 등에 노출됐을 때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해당 질병과 업무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해야 함이 타당하다.

뇌심혈관질병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3가지 제안의 일부라도 받아들여져 피재근로자들에 대해 신속하고 공정한 권리구제가 이뤄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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