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사실 오래된 약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후보 시절 제시한 공약이었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한국노총이 더불어민주당과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을 구성하며 주요 의제로 다뤘던 제도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에서 의결한 내용이기도 하다. 경사노위 합의를 실현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김주영(61·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정안 발의자이면서 이 모든 과정에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으로 역할을 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주영 의원을 만나 노동이사제의 의미와 법안 통과 전망을 물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최근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했다. 안건조정위는 상임위원회에서 이견이 있는 법안을 처리하기에 앞서 구성해 심의하는 소위원회다. 여야 교섭단체가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한다. 최장 90일 동안 법안을 심의한다. 야당은 조정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공공기관 부실 막을 법”

-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공공기관운영법을 발의했다. 왜 노동이사제가 필요한가.
“1986년 한국전력에 입사하고 노조 생활을 28년간 했다. 공공부문에서, 특히 전국전력노조 위원장으로 오래 활동했지만 경영 부분에 대해서는 내부까지 알 수가 없었다. 노조위원장으로서 매년 세계 각국 노조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노동이사제를 접했다. 프랑스에서는 이사회에 노동이사가 3분의 1이나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와 정치·경제적으로 차이가 없는 대만은 20년 전부터 노동이사제를 하고 있다. 독일은 근로자대표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하는 공동결정제도를 갖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안 되는지, 의문과 고민이 늘 있었다.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은 지난해 경사노위 합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장의 고민과 경사노위 합의 과정에서 나온 의견들을 최대한 담으려 했다.”

지난해 11월 경사노위 업종별위원회인 공공기관위원회는 ‘공공기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합의’를 이뤘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과 직무 중심 임금체계 자율적·단계적 개편을 담았다. 경사노위 본위원회 통과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노동계와 정부는 찬성했지만 재계는 끝내 반대했다. 지난 2월 경사노위는 본위원회에서 관련 안건을 의결했는데 사용자위원 5명 중 4명이 동의하지 않았다.

-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공공기관 운영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정부 정책이라며 공기업이 밀어붙이다 부실로 내몰리는 경우는 막을 수 있다. 적어도 이사회 회의록이 남아 누가 잘못했는지 책임 소재를 가릴 수는 있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해외 자원개발에 내몰려 공기업들이 부실화했다. 두고두고 반성해야 할 사안이다. 노동이사제가 있었다면 누가 부작용을 외면하고 자원외교에 찬성했는지, 어떤 논리로 찬성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견제 활동을 통해 국민 재산인 공기업을 조금이나마 정상화할 수 있다고 본다. 노동이사제가 이끌 변화들이다.”

- 재계 반대가 심하다. 어떻게 보나.
“보수적 성향의 학자들과 재계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시행되면 노동자들이 경영·영업에 개입해 회사 경영을 망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본적인 노사관계를 몰라서 나오는 걱정이다. 노사관계는 노사협의로 이뤄진다. 이사회는 처음엔 합의를 시도하다 합의가 안 되면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한다. 이사회가 결정하는 사안을 노동이사 혼자서 막아 낼 수 없다.”

김주영 의원은 “방만경영의 원인으로 노동자를 지목했던 구조가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 냈다”며 “이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부문 노조에 있으며 관찰한 바로는 정부는 공공부문을 공격할 때 항상 방만경영 선진화·정상화를 내세우며 개혁 대상으로 노동을 내세웠습니다. 노조가 잘못이라는 인식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는 노조는 없습니다. 회사와 노동자 모두가 잘살게 하는 게 노동이사제입니다.”

“여야 합의 중요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멈춰 있다.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원회 의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한국노총을 방문했을 때 공무원·교원 노조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도입과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에 찬성 의견을 분명히 했다. 동반자 의식이 중요하다고 거듭 말했고 합리적인 경영과 부실 방지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럼에도 의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처리)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비친다.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달리 보면 공당 대선후보가 한 말이 당에서 영향력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국회 논의는 거대 여야 대선후보의 말로 급진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22일 한국노총을 찾아 “야당이 반대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신속하게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도 이달 15일 한국노총 간담회 자리에서 “공공기관 도입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 국민의힘이 어떤 이유로 법안 통과를 반대하나.
“국민의힘이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다. 다만 재계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으로 본다. 이달 20일 경영계 대표들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 면담했다. 그들은 민간기업 확대를 우려했다. 국민의힘에도 마찬가지 의견을 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현재 논의되는 법안은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공기관운영법이다. 민간기업에 노동이사제를 적용하는 법안이 아니다. 민간기업에 노동이사제를 적용하려면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

- 단독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있나. 2019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야당이 안건조정위원 명단을 내지 않고 시간을 끌었을 때 여당이 직권으로 정치개혁 법안을 처리한 전례도 있다.
“안건조정위원회를 단독으로 소집한 것이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안건조정위원회는 국회법에 따라 90일간으로 시한이 정해져 있다. 국민의힘을 제외하고는 이미 위원 명단이 구성돼 있다. 안건조정위원회를 열고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합의가 제일 좋은 방안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중이다. 경사노위에서 합의한 부분조차 합의를 통해 법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경사노위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야 합의가 안 될 경우에는 명확한 입장을 갖고 처리해야 할 책무가 있다.”

- 구체적인 기한이 있는가.
“해를 넘기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일하는 모든 사람 보호 정책,
조율은 마쳤고 발표 시기 고민”

김주영 의원은 현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선대위에서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양대 노총이 합류한 범노동 선거본부를 표방하고 있다. 노동위원회는 다음달 공식 출범해 노동정책을 발표하고 노동현장 조직화에 나설 계획이다.

- 선거를 70여일 앞두고 있는데 노동공약이 안 보인다. 국민의힘 ‘반노동’ 대 더불어민주당 ‘비노동’ 선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선대위 노동위원회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공약이 있는가.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정책은 조율해 놓은 상태다. 다만 발표 시기를 살피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정책연대, 정책협약 시기 등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정책과 복지정책 사이의 연관성이 있는데 같이 정책을 실현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를 봐야 하기 때문에 어떤 수준으로 발표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선거가 좀 더 가까워지면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말미에 김 의원은 “노동이사제가 피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라며 다시 노동이사제 도입 의미를 강조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입니다. 올해 재벌기업 총수 신년사를 보면 ESG 경영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배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지난해 1월21일 세계경제포럼(WEF)은 ESG 경영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핵심 지표로 지배구조, 지구, 사람, 번영이라는 틀을 제시했습니다. 그중 으뜸은 지배구조였습니다. 지배구조 원칙으로 인종과 성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성과 이해관계자 관여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세계 경제포럼의 틀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며 사라졌습니다. 기업은 총수의 것이라는 인식, 그런 인식으로 인한 경영 문제들이 돌출될까 봐 그랬던 것일까요. 지배구조의 다양성 확보와 노동이사제는 대세입니다. ESG 경영을 공공부문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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