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

대상판결: 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19다280733 판결

1. 사안의 개요

가. 당사자 관계

이 사건의 피고인 은평구는 2008년 2월께 옛 정신보건법(현 정신겅강증진 및 정신질환자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령에 따라 은평구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운영을 서울시립 은평병원에 위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센터 위탁계약은 3년 단위로 갱신됐다. 센터 위탁에는 센터를 운영하는 주체가 계약기간 중 변경되는 경우 새로운 운영주체가 사업과 직원들의 고용관계를 승계해 계약기간 만료시까지 사업을 수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원고는 은평병원과 2년 단위 근로계약을 체결해 2008년부터 센터에서 근무한 근로자다. 원고의 근로계약에는 원고의 근로조건에 관해 ‘이 계약의 정함의 없는 사항은 서울특별시 기간제근로자 관리규정, 2016년 정신보건사업안내 및 이 사건 센터 운영정관과 통상 관례에 따른다’고 규정돼 있었다. 원고는 2016년 11월에 은평병원과 체결한 근로계약의 기간을 2018년 12월31일까지 갱신했다.

나. 피고 은평구의 원고에 대한 고용승계 거부 통지

2017년 3월 센터 회계담당직원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보조금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피고 은평구는 횡령사건을 이유로 은평병원과 센터 위탁계약을 2017년 9월 해지하는 것으로 최종 합의했다. 이후 은평병원은 피고 은평구에 센터 위탁계약에 따라 원고를 비롯한 센터 근로자들의 고용승계를 요청했다. 그러나 피고 은평구는 센터 근로자들의 고용을 승계하지 않고, 시간선택제 임기 공무원을 채용해 센터를 운영하겠다고 답변했다. 원고는 시간선택제 임기 공무원 채용 절차에 응했으나 최종 탈락했고, 결국 피고 은평구의 고용승계 거부로 퇴직했다.

2. 당사자의 주장

가. 원고 주장의 요지

첫째, 센터 위탁계약 및 원고의 근로계약에서 원고의 근로조건을 구성하는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사업안내에 의할 때 센터운영 주체 변경시 직원의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둘째, 센터 위탁계약의 고용승계 조항은 일종의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수익자인 원고가 묵시적으로 수익의 의사표시를 했으므로 낙약자인 피고에게 직접 고용승계의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나. 피고 주장의 요지

첫째, 센터 위탁계약에서 고용승계 조항은 위탁운영을 전제로 위탁운영의 주체가 변경되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위탁에서 직영으로 전환하는 경우에는 고용승계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둘째, 원고의 근로조건을 구성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사업안내는 행정기관 내부 사무처리준칙에 불과해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

셋째, 원고의 근로계약은 은평병원의 계약해지 통보에 따라 이미 종료됐으므로 피고가 승계할 고용계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3. 법원 판단의 요지

법원은 피고가 원고의 고용승계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센터 위탁계약에서 센터의 운영주체가 변경되는 경우 새로운 운영주체가 센터 근무 직원의 고용관계를 원칙적으로 승계하도록 정하고 있다. 센터는 정신보건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관리·운영의 책임이 있다. 피고 은평구는 지방자치단체로서 근로자의 고용존속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지는데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새로운 수탁기관에게는 고용승계를 요구하면서 직접 운영하는 경우에는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는 해석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

둘째, 원고는 은평병원과 근로계약을 체결할 당시 센터 위탁계약에 따른 운영주체 변경시 고용승계에 대해 동의 내지 승낙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고의 근로계약상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사업안내는 근로계약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고,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사업안내에 의할 때 운영형태를 불문하고 센터운영 주체 변경시 소속 직원들에 대한 고용관계를 승계하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원고는 센터 위탁계약 종료시 새로운 운영주체로의 고용승계에 명시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은평병원이 원고에게 근로계약 해지 통보를 한 것은 센터 위탁계약 해지에 따라 더 이상 고용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됨을 통지한 것에 불과하다. 은평병원의 근로계약 해지 통보는 근로계약 자체를 해지한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 없으며 정당한 해고사유와 절차를 거친 것으로도 볼 수 없어 효력이 없으므로 피고 은평구가 고용승계 의무를 면했다고 할 수 없다. 나아가 지방공무원법에 따른 절차에 따라 센터운영 인력을 채용한다 하더라도 피고가 고용승계 의무를 면하는 것도 아니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기존의 고용승계 약정에 관한 법리를 그대로 적용했다. 근로자는 자신이 속한 사업의 운영주체 변경에 관계없이 근로의 계속을 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사업운영에 관한 위탁계약에서 계약이 종료되면 위탁자가 그 사업을 위해 수탁자에게 고용된 근로자에 대한 고용을 승계하기로 정한 경우 근로자가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고용승계에 대해 동의 내지 승낙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1다45217 판결 등).

대상판결이 종전의 판례와 다른, 새로운 판단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이전 정부 또는 공공기관과 맺는 위탁계약의 상대방인 수탁자만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근로계약 갱신 거절이 주로 문제가 됐고, 해당 사안에서 법원은 위 고용승계 약정에 관한 법리를 근거로 변경된 수탁자에게 고용승계 의무를 인정한 바 있다. 이와 달리 대상판결은 위탁계약 자체가 해지돼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변경되는 경우에도 고용승계 약정의 효력이 위탁자인 정부 또는 공공기관에게 미치는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종전 판결과는 차이가 있다.

위탁운영에서 직영으로 운영의 형태가 달라진다 하더라도 업무 내용의 동일성이 유지된다면 고용승계 약정의 효력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 피고 은평구는 센터 위탁계약에서 정한 고용승계 약정은 수탁자 지위에 있는 운영주체 변경시에만 고용승계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피고 은평구에게는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행하는 업무의 동일성이 유지되고 있다면 수탁기관이 변경되는 경우나 운영형태가 위탁에서 직영으로 변경되는 경우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이 사건에서 센터는 옛 정신보건법이 정부와 지자체에게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 등을 위해 부여한 의무 이행 차원에서 운영되던 것이다. 피고 은평구도 센터 위탁계약의 목적이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지역정신보건 사업의 추진’이라는 점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센터 운영은 법이 국가에게 부여한 의무 이행의 일환이므로 센터의 운영은 일시적이고 단기적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피고 은평구가 수탁자들과 ‘치료적 관계 형성 및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센터 종사자들의 고용승계 약정을 포함한 센터 위탁계약을 체결해 온 것으로 봄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고용승계 의무의 주체가 센터 운영의 최종 책임자인 피고 은평구가 되는 경우 역시 고용승계 약정은 적용되는 것으로 봐야 하며, 피고 은평구에게만 고용승계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다고 볼 만한 예외적인 사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지점을 모두 지적하며 피고에게 고용승계 의무가 있음을 인정했는데, 고용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의 법리와 함께 옛 정신보건법상 국가의 의무를 함께 고려한 판단으로 보인다.

더불어 대상판결에서는 행정기관의 사무처리준칙, 소위 정부 지침이나 매뉴얼이 근로조건의 일부로서 근로계약을 구성한다면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는 구속력을 갖는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정부는 최소한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침을 내리고 있으나 지침들은 많은 경우 행정규칙에 불과해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지침들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은 시행될 경우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향상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나 대외적 구속력이 존재하지 않음을 빌미로 지침이 그대로 시행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대상판결에 의할 때 해당 지침들을 근로계약 내용에 포함시킨다면 해당 지침의 내용들이 사용자와 근로자의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범위에서 취업규칙 내지 근로계약의 일부로서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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