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숨진 서울 양동 쪽방촌 주민이 29명이래요. 평균 나이가 48세고요. 60세 이후도 너무 걱정이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미래는 거의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이지안(49·가명)씨가 홈리스 추모제가 한창인 서울역광장을 찾았다. 경기도 한 청소년쉼터에서 면접을 보고 오던 길이라던 이씨는 “쪽방촌 주민의 삶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내가 원하는 일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다”고 답답해 했다. 청소념쉼터 야간 보호상담원으로 일했던 그는 지난해 12월 1년3개월 만에 계약종료로 해고됐다. 쉼터 청소년들의 생활을 지도하고, 상담하는 업무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계약종료’ 앞에 버틸 재간은 없었다. 그 뒤 1년, 그는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만 55세가 되기 전에 정규직이 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종료 3개월을 앞둔 현재, 그의 바람은 실현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고,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겠다는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그새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은 더 공고해졌고, 매년 일터를 바꾸는 지안씨의 사정도 그대로다. 26일 <매일노동뉴스>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평가하고 차기 정부의 과제를 짚었다.

“시행되지 않은 정책, 멈추지 못한 차별”

촛불에 힘입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란 비전을 내걸고 100대 국정과제를 내놓았다.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도 그중 하나였다.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해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줄인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차별시정 제도 전면 개편과 1년 미만 근로자(비정규직 포함) 퇴직급여 보장, 최저임금 1만원 실현 등도 비정규직 문제 해소 방안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공약은 구호로만 남았고 지안씨의 불안정한 삶도 그대로다.

지안씨는 청소년쉼터에서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일했다. 하루 걸러 오후 5시 출근해 다음날 오전 10시에 퇴근했다. 하루 17시간씩, 주 3일 쉼터 사무실에서 꼼짝없이 지내야 했지만 월급은 100만원으로 최저임금도 되지 않았다. 지안씨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예산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올해 3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노동위는 갱신기대권을 스스로 입증하길 요구했다. 두 달 뒤인 5월 국가인권위에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시정 진정을 넣었지만 “동종·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비교대상 근로자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장벽이 됐다. 지안씨는 “함께 일한 정규직이 비교대상 근로자라고 이야기해도 자꾸 회사는 아니라고, 하는 일이 다르다고 차이점을 부각해서 설명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을 만들어 내고 차별을 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고 전했다.

2018년 하루 4시간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낮은 수가와 단시간 노동으로 벌이가 좋지 못했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시작한 사회복지 노동은 그에게 안정적인 삶까지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지안씨가 일하는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은 2021년 기준 전체 비정규직 809만명 중 16.8%(135만6천명)를 차지해 산업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다.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저임금·단시간 일자리로 변질”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해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이 중 34만개는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만들겠다고 했다. 김형용 동국대 교수(사회복지학)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23만9천개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창출됐는데 가장 비중이 높은 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 사업(4만명 참여)의 경우 참여자는 월 30시간(주 7~8시간) 일하고 월 30만원을 받았다. 본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사회서비스 공단으로 창출하겠다는 인력 34만명 중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해 직접고용한 인력은 지난해 기준으로 2천400명뿐”이라며 “중앙정부 지원이 부족한 데다 서울시의 경우 시장이 바뀌면서 그동안 일군 사회서비스원 성과마저도 위태롭게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비정규직 규모는 계속 늘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2017년 657만8천명이던 비정규직은 올해 806만6천명으로 급증했다. 고용노동부가 밝히는 것처럼 비정규직 규모 집계 방식이 2019년부터 달라져 35만~50만명이 원래 존재했다가 새롭게 포착된 규모라고 해도 증가 폭은 큰 편이다.

비정규직 중 시간제 노동자가 특히 크게 늘었는데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불경기 속 인건비를 줄이려는 사용자들의 유인을 정부가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21년 시간제 노동자는 351만명으로 2017년 266만명보다 85만명 늘었다.

조돈문 명예교수는 “단시간 노동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계속 증가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급증했고 특히 초단시간 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늘었다”며 “5년 임기 동안 단시간 노동자는 25% 증가했지만 초단시간 노동자는 80%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조 명예교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주휴수당이 적용되지 않으니 인건비 절감효과가 훨씬 크다. 사용자가 이를 악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성 노동자는 20년 넘게 최저임금에 머물렀다”

성별 고용형태와 임금격차도 여전하다. 지난 8월 기준 비정규직 806만6천명 중 여성은 449만1천명(55.7%), 남성이 357만5천명(44.3%)이다. 2017년(55.2%)보다 비중이 높아졌다.

시간당 임금총액 기준 성별임금 격차는 개선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20년 노동부 근로형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남성 임금 대비 65.86%였던 여성임금(1만3천292원)은 2020년 73.38% 수준(1만4천302원)으로 개선됐다. 여성의 경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후 최저임금 수준 일자리를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성평등 임금공시제와 성별 임금격차 해소 5개년 계획 등 집권 초기 국정과제는 첫발도 떼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스물여섯 살 결혼하기 전까지 사무직(타자기술원)으로 일하던 정향미(72·가명)씨는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전업주부로 살았다. 마흔일곱이 돼 그가 겨우 찾은 일은 청소였다. 이후 25년째 쉼 없이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그의 임금은 최저임금과 같거나 최저임금을 겨우 넘었다. 정년 나이를 넘긴 현재 고용형태와 처우는 계속 후퇴 중이다.

정씨는 “아침 7시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데 점심시간이 2시간”이라며 “한 달 157만원 정도를 손에 쥐는데 딱 최저시급”이라고 말했다. 토요일 격주 근무가 포함된 금액이다. 2017년 대비 최저임금은 계속 올랐지만 그의 임금은 4년 전과 비슷하다. 노조가 있던 사업장에서 없던 사업장으로 옮겨 왔기 때문이다. 1년 단위 계약은 6개월 단위 계약으로 더 짧아졌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남녀 임금격차가 계속 개선되고 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결국 여성 고용률이 높아지려면 20대가 적극적으로 일을 구하고, 정년 이후 고령층도 계속해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외관상 성과 무관한 중립적 정책이지만,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여성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정책을 잘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사태 이후 비정규직 정책 손 놓은 정부”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사태 이후 비정규직 정책에 손을 놨다고 평가했다. 정흥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사용자쪽과 보수진영의 총공세 과정이 있었다”며 “국민을 설득하고 계속적으로 민간부문 고용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돈문 명예교수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처음 추진하다가 실패하면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도 실패했다”며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효과는 시차를 두고 발생하는데 인건비 상승효과는 곧바로 나타난다”며 “이 불일치 문제를 풀려면 경제·산업정책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윤율 격차를 해소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공’이자 ‘과’로 남았다. 2017년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기간제·간접고용 노동자 41만여명 중 20만5천명을 정규직화하기로 결정했고, 지난달 기준 96%(19만6천여명)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전환을 허용하면서 근본적인 차별해소에 실패했다.

정규직이 되고 싶다던 이지안씨의 바람은 2022년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면 이뤄질 수 있을까. 이씨는 “만 50살이 돼 가면서 정규직으로 취업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60대 이후도 걱정이지만 60대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남은 10년도 확실한 게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르면 만 55세 고령자의 경우 2년 이상 고용해도 계약직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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