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강경한 대정부 투쟁을 이어 온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올해의 인물 1위(29표)에 선정됐다.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내걸은 ‘노동존중 사회’가 사실상 좌초되면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양경수 위원장의 존재감이 커진 모양새다.

양대 노총 위원장 나란히 1·2위

<매일노동뉴스>가 노사정·전문가 100명에게 물었더니 가장 많은 이들이 올해의 인물로 양경수 위원장을 꼽았다. 지난 1월 임기를 시작한 양경수 위원장은 7·3 전국노동자대회를 주최한 혐의로 지난 9월2일 구속됐다. 양 위원장은 구속수감된 가운데서도 공약한 총파업을 성사시켰다. 지난달 25일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후 민주노총과 5개 진보정당, 민중경선 추진 조합원 서명운동본부의 진보진영 대선후보 단일화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2위(15표)에 올랐다. 김동명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자와의 연대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0월 출범한 한국플랫폼프리랜서공제회가 대표적 사례다. 한국노총은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제회를 설립했다.

김 위원장은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제도개선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양대 노총 공동기자회견에서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공무원·교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14일에는 국회 앞에서 2년 만에 장외집회를 열었다.

지난 3년을 달려온 ‘김용균 엄마’ 김미숙 이사장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김용균씨가 각각 올해의 인물 3위(13표)와 공동 9위(4표)에 선정됐다. 2018년 12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아들 김용균씨를 가슴에 묻고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은 힘겹게 싸워 왔다. 김미숙 이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29일간의 단식을 통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이끌어 냈다. 김 이사장은 산재사고 예방과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10일 3주기를 맞은 고 김용균씨는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이 지연되면서 거듭 호명되고 있다. 김용균 사망사건 원·하청 책임자 재판도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은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김미숙 이사장은 “진짜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내년 2월10일 선고 공판이 예정돼 있다.

평택항에서 스러진 청년노동자 이선호씨
산재사망 줄이지 못한 안경덕 장관

지난 4월22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이선호씨(4위·12표)도 김용균씨와 같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원청업체 동방은 위험한 작업 환경에 이씨를 방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가 동방을 특별근로감독한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197건 적발됐다. 지난 6월19일 사망 59일 만에 열린 장례식에서 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는 “선호의 죽음이 잘못된 법령을 고치는 초석이 됐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항만운송사업자에게 항만 안전관리에 관한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 항만안전특별법이 지난 8월 제정됐다.

안경덕 노동부 장관이 5위(11표)를 차지했다. 안경덕 장관은 지난 5월 취임식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말 기준 산재사고 사망자는 79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15명에 비해 25명 감소하는 데 그쳤다. 지난 9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계는 직업성 질병의 범위에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 직업성 암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인1조 근무와 과로사 예방을 위한 적정인력 보장을 시행령에 명시하라는 요구도 반영되지 않았다.

‘반노동’ 윤석열이냐, ‘비노동’ 이재명이냐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6위(8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7위(7표)를 차지했다.

윤석열 후보는 잇따른 반노동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윤 후보는 지난달 충북 청주의 한 기업을 찾아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 상한제를 언급한 뒤 “비현실적인 제도는 철폐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언론 인터뷰에서 “주 120시간을 바짝 일하고 이후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지난 9월 안동대 학생 간담회에서는 “손발로 노동을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며 “그건 인도도 안 하고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가 ‘반노동’ 후보라면 이재명 후보는 ‘비노동’ 후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노동존중 사회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 구체적인 노동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노동 공약이라고 내놓은 것은 윤석열 후보도 공감을 표시한 공무원·교원 타임오프 제도 적용,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정도다. 갈지자 행보도 보이고 있다. 지난 3일 삼성경제연구소를 찾아 “친기업과 친노동이 양립 불가능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재직 시절에는 “재벌체제 해체에 목숨을 걸겠다”고 외쳤다.

노정합의 타결한 나순자 위원장
존재감 사라진 문재인 대통령

극적인 노정합의를 타결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8위(5표)를 기록했다. 나순자 위원장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9월2일 새벽 코로나19 대응인력 투입 기준 마련, 공공병원 확충, 간호사 처우개선, 교육전담간호사 제도 확대, 야간간호료 지원 확대 등 5개 쟁점 사항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예정된 보건의료노조 파업도 철회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 김용균씨와 함께 공동 9위(4표)를 차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8년에는 2위, 2019년 6위, 지난해 8위로 순위가 하락했다. 소득주도 성장,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1만원 등 공약이 빛을 바래면서 문 대통령에 대한 노동계의 기대도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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