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하늘 우중충 무거웠고, 길은 어딜 가나 꽉 막혔다. 삿대질을 대신한 경적 끊이질 않던 도로는 젖어 검었다. 눈발 두어 개 날리나 싶더니 비가 흩뿌렸다. 눈이 오길 바랐다는 김계월씨는 농성장 난로 앞에서 지난 시간을 곱씹다 그만 눈이 붉었다. 말이 멈춘 시간 동안 그렁그렁 고인 물에 주황색 불꽃이 들어 일렁거렸다. 치열한 시간이었다고, 일상이 싸움이었다고 했다. 두 번의 겨울, 그는 여전히 길가 비닐 집에 산다. 법원의 최종 판단은 멀었고, 정년이 훌쩍 가까웠다. 부스럭 비닐 문 열고 누가 불쑥 찾아왔다. 내일 많이 추워진다고 해서 왔단다. 그가 건넨 종이봉투엔 뭐가 잔뜩 들었는데, 그중엔 작은 손편지도 하나 있어 김씨는 안경을 꺼냈다. 또박또박 읽었다. 웃을 일인데, 또 울고 만다. 오늘의 산타라며 김씨는 좋아했다. 매일 천사가 다녀간다고도 했다. 연대라고 불렀다. 농성 589일, 지독한 시간을 견딘 힘이다. 울다 웃던 김계월씨가 오늘의 산타가 쓰고 온 알록달록하고 끝이 뾰족한 털모자가 퍽 맘에 들었던가 보다. 한 번 써 보자고 나서는데, 어려울 것도 없어 주고받는다. 같이 웃었다. 내년 소망 질문엔 원직복직 답이 빨랐다. 또 하나를 꼽자면 임금지급 가처분신청이 인용되는 거란다. 월급이란 걸 받은 지가 오래라서 첫 월급 느낌일 것 같다고 그가 말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고, 작은 선물도 주고 싶다고 했다. 투쟁 일지를 정리했더니 두툼하다. 안 해 본 것 없다는 그와 동료들은 연말, 다시 한번 복직을 위한 행진에 나선다. 해넘이 행진이라고 새롭게 이름 붙였다. 묵은 시간 위로 하루가 더해질 뿐일 텐데, 사람들은 그걸 새것으로 여기곤 한다. 마음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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