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경기도 포천에 있는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지 1년이었다.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숙소가 사회적 논란이 됐고, 정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농촌 현장의 이주노동자 숙소는 여전히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크다. 속헹씨의 죽음 이후 1년,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은 것일까.

또 다른 속헹들, 아직 사람 살 수 없는 곳에 산다
정영섭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

▲ 정영섭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
▲ 정영섭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

십수년 전부터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이주노동자 주거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자 2017년 고용노동부는 정말 비닐하우스만 콕 집어 금지했다. 즉 비닐하우스 내에 설치된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숙소, 공장 내 딸린 방, 작업장 부속시설 등 대다수 임시가건물은 그대로 둔 것이다.

열악한 상황이 개선될 리 없었다. 더욱이 같은 해에 노동부는 ‘숙식비 공제지침’을 만들어 사업주가 숙식비 명목으로 통상임금의 8~20%까지 사전공제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 방에 두세 명, 서너 명 살아도 1인당 그만큼 뗄 수 있게 해서 사업주들은 월세 장사까지 할 수 있게 됐다.

겨울 한파가 매섭게 몰아쳐서 체감온도 영하 20도에 달했던 지난해 12월. 포천의 어느 농장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서 캄보디아 여성노동자 속헹씨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올해 정부는 부랴부랴 실태조사를 하고 두 차례에 걸쳐 개선책을 내놨다.

정부 대책은 △임시가건물은 건축물대장 등록이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가설건축물 축조 신고필증을 받은 경우에만 허용 △숙소 용도가 아닌 불법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한 경우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허용 △기숙사 시설표 개선과 기숙사 시각 자료(사진·영상)를 사업주가 제출 △숙소시설 개선비 지원 등이었다.

이러한 대책에서 정부는 그동안 허용해 왔던 무허가 임시가건물 숙소를 ‘불법 가설 건축물’로 확인함으로써 2004년 고용허가제 실시 이래 정부 스스로가 불법을 용인해 왔음을 자인했다. 그런데 정부 대책이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 과연 이주노동자 기숙사는 대폭 개선됐는가? 필자가 보기에 개선은 너무나 멀고 악용사례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건축법과 농지법을 위반한 임시가건물을 완전히 금지하지 않았다.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신규로 고용할 때에만 등록하거나 신고필증을 받으라는 것이다. 기존에 고용돼 임시가건물에 사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고 다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해 준 것이다.

그런데 사실 코로나19 상황으로 신규 고용은 대폭 줄었기에 사업주들이 새 숙소를 마련해야 하는 압박이 크지 않다. 노동자들로서는 다른 사업장으로 옮길 수 있다 해도 대개 조건이 비슷하기 때문에 기대가 낮다. 그래서 여전히 또 다른 속헹들은 아직도 사람 살 수 없는 임시가건물에 대다수 그대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모든 분야에서 임시가건물 기숙사는 금지해야 한다.

계약을 새로 해야 하는 사업주들 가운데 일부는 인근의 빌라나 아파트를 얻어서 노동자가 살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업주들이 전세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세 명 살게 하고 한 사람당 45만원씩 받아 챙기는 사례다. 비슷한 사례는 적지 않다.

어떤 사업주는 노동자 숙소 주소만 사업주 집으로 바꿔 놓고 실제 주거는 비닐하우스 내 임시가건물에 그대로 살게 했다. 이런 건 철저하게 모니터링하고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통상임금의 최대 20%까지 사전공제할 수 있게 하는 숙식비 징수지침을 하루빨리 폐지해야 하고 안전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가이드라인을 새로 제정해야 한다.

기숙사 기준 대폭 강화, 지자체별로 농어촌 및 공단 지역에 공공 기숙사 설립, 기숙사 개선을 위한 정책자금 지원 확대 등을 포함하는 종합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공적 책임,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더 이상 이주노동자의 희생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딸기를 계속 먹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
▲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농업은 생명! 농촌은 미래’라는 슬로건이 공허할 뿐이다.

지난해 12월20일 새벽 무섭게 휘몰아친 한파 속에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농업노동자 속헹씨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혼자 숨졌다. 추위를 막아 주기 힘든 방엔 20여일 뒤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속헹씨의 비행기 티켓만 남았다.

얼마 전까지 이주노동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제조업에서 일하는 남성뿐이었다. 하지만 농축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거의 모든 작물이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쳤다는 것을 이제는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 특히 농축산업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비율은 제조업보다 훨씬 높은 31.8%인데, 작물재배업에서 이주여성 비중은 과반수가 넘는다.

심퍼시(연민·동정, Sympathy)와 엠퍼시(공감, Empathy)의 차이가 자주 이야기되곤 한다. 속헹씨 사망 1주기를 맞아 심퍼시를 넘어 엠퍼시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심퍼시는 속헹씨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는 것이라면, 엠퍼시는 속헹씨의 문제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농업 이주여성들은 20살 무렵에 한국에 온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의 젊은 청년이 지인도 없는 타국에 일하러 온 것이다. 한 달에 두 번밖에 못 쉬고 하루 10시간씩이나 딸기밭에서 일하지만, 스스로 잘 견뎌 내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낄 것이다.

20대 여성들이 E-9-3(고용허가제 농축산업) 비자로 한국에 온 것은 농촌생활과 농업노동이 적성에 맞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용자들에게 선택받아야만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데, 제조업 사업주들은 여성노동자를 거의 선택하지 않는다.

속헹씨 죽음 이후 이주인권단체들은 열악한 이주노동자의 기숙사 현실과 그 원인을 알리기 위해 발버둥쳐 왔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이주노동자 숙소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래놓고 농장사업주들의 반발에 밀려 핵심내용인 ‘가설건축물 축조 신고필증과 건축물 대장상 주거시설임을 증명하는 서류 제출에 대한 사업주 의무’를 뺀 채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정보제공에 관한 규정’을 시행하기로 했다.

고무대야를 묻어 놓고 화장실로 쓰게 하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이주노동자 숙소를 개선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하지만 가설건축물이냐, 아니냐는 수준의 이주노동자 주거 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주인권단체가 10년 넘게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고 외쳤다고 해서, ‘비닐하우스 숙소’만 없앤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깨달았다.

1인 가구의 한국 여성들은 집을 구할 때 꼭 저녁에도 가 본다. 주변 가로등 밝기는 어떤지, 골목은 위험하지 않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깜깜한 논밭 한가운데 있는 경우가 많다. 농장사업주들이 불법 가설건축물이 아닌 합법 가설건축물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고 반발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된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 허용 사유로 ‘불법 가설건축물 숙소 제공’을 또 추가했지만, E-9-3 노동자는 어차피 농축산업 부문에서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 농축산업 노동조건과 숙소 상황이 거의 비슷하다면 사업장을 변경한다 한들 나아지는 것은 없다.

일부 지자체가 만들고 있는 이주노동자 공공기숙사는 정부가 앞장서서 추진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출퇴근 셔틀버스, 한국어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다.

농업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농촌의 미래를 꿈꾸기 위해 노예나 기계가 아닌 ‘사람’이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 이주민들의 체류비자 문제 등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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