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근에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하려면 대표자를 대신해서 안전보건만 전담하는 직위(예를 들어 ‘안전보건이사’)를 별도로 만들고, 대표자는 아예 그 문제에 관여하지 말아야 처벌을 피할 것이라는 의견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다. 사실 전혀 새로운 의견은 아니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공장장이나 현장소장이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선임된 경우라면, 대표자가 그 현장에서의 안전보건의무 위반에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고의가 없다’고 봐 형사책임을 면해 왔다. 반대로 대표자가 관여한 증거가 많을수록 현장에서의 안전보건이 엉망인 사실을 인식했다고 보고 ‘고의’가 인정된다. 따라서 대표자는 아예 관심을 끄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 등”에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대표자)뿐만 아니라,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도 포함되므로, 안전보건이사를 선임하고 대표자는 신경을 끄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조언이 여전히 유효하지 않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짧은 생각이다. 첫째, 중대재해처벌법은 대표자 “또는” 그에 준하여 안전보건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경영책임자 등으로 책임을 지는 구조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희생양이 돼 대신 책임을 지는 구조라고는 볼 수가 없다. 의무불이행의 내용에 따라서 한 사람 또는 다수가 책임을 지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고용노동부 또한 같은 견해다(고용노동부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 23쪽).

둘째, 생각보다 ‘안전보건이사’가 이 법에서 말하는 “경영책임자”로 인정되는 것은 쉽지 않다. 노동부는 사업 또는 사업장 전반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조직‧인력‧예산 등에 관해 “최종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아닌 한 경영책임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다(위 해설서, 22쪽). 단순히 자리 하나를 만들어서 외관을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만약에 안전보건 분야에 턱없이 부족한 조직‧인력‧예산을 배정하고 방치해서, 안전보건이사가 혼자 발버둥쳐도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다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라면, 조직 내에서 최종적인 자원배분을 담당하는 대표자도 같이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셋째, 대표자의 무관심은 그 자체로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 가장 첫 번째로 정하는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는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하는 것이다(시행령 4조1호). 그리고 노동부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에 그쳐서는 안 되고 사업의 특성과 유해위험요인, 규모를 고려해서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특히 반복적인 재해가 있음에도 아무런 목표나 방침이 없는 경우라면 이 의무를 “명백히 해태”한 것이라고까지 알려 준다(위 해설서 45~46쪽). 그러므로 중대재해가 반복됨에도 대표자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안전보건이사에게 미루는 것은 명백한 유죄의 증거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결국에는 중대재해를 ‘줄이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방법은 정답에서 멀어지는 길일 뿐이다. 재해 예방은 현장 노동자부터 반장·중간관리자·전문가·대표자까지 안전보건에 관한 관심을 높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선진국 사례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럼에도 대표자가 책임을 미루는 일부터 생각하는 것은 하급자들에게 좋은 신호가 될 수가 없다. 재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대표자가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재계는 이 법의 의무가 모호하기 때문에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예측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반대로 본다면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기 위한 점검절차를 마련한다면 이 법의 의무를 준수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중대재해가 이전보다 줄어든다면, 처벌받을 일도 적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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