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조 변호사(법무법인 매헌)

대상판결 : 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0다273939 판결

1. 사실관계 및 쟁점

피고 청호나이스 주식회사는 정수기·공기청정기·비데 등 가정용 기기를 제조해 이를 판매하거나 렌털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회사다. 피고는 원고 엔지니어들과 상품의 배달·설치·AS·판매계약에 관한 서비스용역 위탁계약을 체결했고, 엔지니어들은 청호나이스가 전산시스템을 통해 스마트폰 앱으로 배정한 설치·AS 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판매목표를 부여받아 상품의 렌털·판매 등 영업업무도 수행했다. 엔지니어들은 설치·AS 업무수행 및 판매실적에 따른 수수료를 지급받았다. 한편 청호나이스는 각 사무소별로 경력이 오래되고 실적이 뛰어난 엔지니어 1명을 SM(시니어 매니저)으로 위촉해 SM과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으로 엔지니어들을 관리하도록 했다. 피고 청호나이스를 퇴직한 엔지니어들은 청호나이스와의 서비스 용역위탁계약은 형식적일 뿐, 그 실질은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계약 관계이었다고 주장하며,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에 따른 퇴직금 지급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청호나이스는 엔지니어들이 청호나이스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은 채 자신들의 계산으로 독립적으로 위탁계약에 따른 용역을 수행하고 그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받은 개인사업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2. 해당 판결의 경과

가. 1심 판결

1심 판결은 엔지니어들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해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는 바, 그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엔지니어들은 설치·AS 및 판매용역 업무를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비중을 달리해 수행했다.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업무를 타 엔지니어에게 자유롭게 이관했으며, 전산으로 업무를 배정하는 것은 용역업무의 달성을 위해 불가피한 것에 불과하다. 엔지니어의 채용은 SM이 주도해 청호나이스의 적극적인 관여가 없었으며, 출퇴근이 강제되는 것도 아니었다. 엔지니어들에게 실시한 교육은 위탁계약의 성질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청호나이스가 SM이나 엔지니어에게 매출 목표를 제시한 것은 매출 및 소득 증대를 위한 것으로서 수탁업무의 최소한의 지시로 볼 수 있다.”

나. 2심 판결

2심 판결은 1심과 반대의 사실인정을 하면서 엔지니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피고 청호나이스가 엔지니어들에게 업무를 배정한 것은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엔지니어들의 기술력과 서비스 역량은 피고의 브랜드 이미지와 사업의 성패에 직결되는 것으로서 피고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할 유인이 있다. 실제 피고는 엔지니어들을 교육하고 등급을 나눠 수수료를 반영하고, 서비스 불만 건에 대한 강제 교육 및 불이익을 부여했다. 피고가 SM을 통해 엔지니어를 관리한 것은 중간관리자를 통해 지휘·감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엔지니어들은 아침조회를 위해 사무소에 출근했다. 업무이관은 업무량을 적절히 분배하는 수단이며, 업무량이나 수수료의 편차도 업무의 특수성 때문이지 피고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2심 판결은 “판매업무를 수행할지 여부를 엔지니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고, 다른 불이익은 없었으므로, 판매업무에 대한 지휘·감독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 판매수수료를 평균임금 산정의 기초임금에서 제외하고, 설치·AS수수료만으로 산정한 평균임금에 따른 퇴직금만을 일부 인용했다.

다. 대법원 판결

대법원은 엔지니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2심 판결을 인용해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또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판매수수료의 임금성을 인정해 이를 부정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판매업무도 엔지니어의 주요한 의무 중 하나이고, 피고 사업의 핵심 부분이다. 피고는 판매 목표를 부여하고 관리했으며, 실적 부진시 각종 불이익을 부여했다. 설치·AS업무와 마찬가지로 판매업무도 SM을 통한 피고의 지휘·감독하에 이뤄지는 근로제공의 성격을 가지므로 판매 수수료도 평균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임금에 해당한다.”

3. 판결의 의미

현재 다양한 업계에서 실질적으로는 근로자에 해당하나,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용역·위탁 또는 도급형식의 계약을 체결하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호받지 못하는 소위 비정규 특수고용직이 많이 있다. 특히 가전제품 렌털업을 운영하는 회사들의 경우 브랜드에 대한 고객 신뢰의 확보를 위해 통일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설치·수리기사에게 요구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이들을 지휘·감독하면서도, 노무비용 절감을 위해서 용역 또는 위탁계약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만연하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함에 있어 계약의 형식이나 내용보다는 실질에 있어 종속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법리인 바(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참조), 동부대우전자서비스 주식회사(변경 전 상호 : 대우일렉서비스 주식회사, 대법원 2014. 8. 20. 선고 2012다108269 판결)와 SK매직서비스 주식회사(변경 전 상호 : 동양매직서비스 주식회사, 서울고등법원 2016. 6. 1. 선고 2014나7966 판결, 대법원 2016. 10. 13. 선고 2016다27382 심리불속행 판결)의 수리기사들이 근로자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 이후 코웨이 주식회사(서울고등법원 2021. 10. 26. 선고 2031229 판결), 쿠쿠홈시스 주식회사(서울고등법원 2021. 10. 22. 선고 2021나2002712 판결), 앨트웰 주식회사(대법원 2021. 8. 12. 선고 2021다222914 판결) 등, 생활가전 렌털업을 영위하는 회사 소속 설치·수리 기사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동종 또는 유사업계에 종사한다고 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쉽게 인정받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생활가전 렌털 회사들이 가전제품 설치·수리 기사들의 노동력을 이용함에 있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회피하기 위해 다양하고 지속적인 위장책(예를 들어 소사장제 등)을 설정해, 기존 법원 판결에 대응하는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으며, 법원도 개별 사건의 사실관계 입증 정도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청호나이스의 경우 2006년께 산업재해 사건에서 한 엔지니어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자(대법원 2006. 11. 10. 선고 2004두6129 판결), 근로자인 지역 사무소 소장이 엔지니어들을 직접 관리·감독하던 것을 바꿔, SM과 위탁계약을 체결해 엔지니어들을 관리하게 했고, 엔지니어를 여러 직군으로 분화해 영업업무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 근로자성이 희박한 재택세일즈 엔지니어 직군을 만들어 일반 엔지니어와 혼동시켰다.

이와 같은 청호나이스의 위장책으로 인해 법원은 여러 재판에서 ‘청호나이스의 엔지니어 운영형태가 과거와 다르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 줘 엔지니어의 근로자성을 부정했다. 엔지니어의 근로자성과 관련한 1심 민사단독부 배당 선행사건 5건 중 4건에서 엔지니어들이 모두 패소 판결을 받았으며, 이 중 1건은 2심 지방법원 합의부에 항소했으나 항소기각판결을 선고받기까지 하였다. 이 사건 재판의 1심(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2부)에서도 역시 엔지니어들이 패소판결을 받았다. 소송과정에서 청호나이스는 위에서 언급한 위장책을 주요 근거로 하는 통계 자료를 제출하였고, 다수 재판부가 통계적 오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엔지니어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8. 23. 선고 2019가합552798(민사합의 42부) 사건에서 위와 같은 것들은 청호나이스의 위장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변론활동이 이뤄지자, 이 사건의 1심에서 엔지니어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던 같은 재판부가 불과 4개월 만에 결론을 뒤집어 엔지니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최초로 선고했다. 이를 시작으로 이 사건의 2심 등 관련 사건의 항소심에서 엔지니어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계속됐다. 최종적으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이 엔지니어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게 됐다. 다만 이 사건의 2심 판결의 경우 엔지니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면서도, 판매업무에 대해서는 청호나이스의 지휘·감독을 부정하는 판시를 했는 바, 청호나이스의 일부 위장책에 넘어간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결국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함으로써 법원이 청호나이스의 위장책을 전부 저지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 판결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용함에 있어 근로자성을 감추는 장치를 끊임없이 강구하는 사용자측과 그 위장책의 실체를 드러내고 실질적 지휘·감독관계를 입증하려는 근로자측의 싸움에서 근로자가 승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근로자성의 입증책임이 근로자측에 있는 현행 법제하에서는 사용자의 내부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는 근로자들이 근로자성을 입증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 판결이라 할 것이다. 이 사건의 1심 법원 및 관련 사건의 하급심 법원들은 청호나이스 엔지니어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했고, 이 흐름이 법원 내에서 대세가 될 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서울고법과 대법원이 이를 뒤집어 엔지니어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은 특수고용 근로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입증에 있어 사측의 위장책을 무력화하는 지속적인 증거 확보와, 사용자의 숨바꼭질을 저지할 수 있는 현명한 법원 판단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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