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일환경건강센터장)

12월20일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숨진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따뜻한 고국으로 돌아갈 항공편을 예약해 두고 그는 코리아의 혹한과 매정함 속에 (집이 아닌)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홀로 피를 토하며 숨져갔다. 식도정맥류가 생길 정도로 간경변이 진행된 노동자가 사망 며칠 전까지 농사일에 시달리며 난방조차 제대로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한겨울을 지내왔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얼어 죽은 것은 아니다’라는 추정과 책임없음을 강변했던 한국 사회의 잔혹에 대한 성찰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런 와중에 캄보디아 농업노동자119의 출범은 의미가 깊다. 금속노조 경남지부의 사회연대사업으로 출발해 노동조합, 법률지원조직, 사회단체 등 11개 단체로 구성된 ‘이주노동119’ 사업단이 만들어졌다. 전국 각지의 이주 활동가들에게 법률 지식을 포함한 활동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해 역량을 강화하고 이주활동가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목적으로 구성된 ‘법률지원단 네트워크’가 이주노동119 사업의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이주민 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이 중심이 돼 캄보디아 농업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농장주의 갑질에 대한 제보를 받고 그에 대한 조직적 지원을 도모하는 ‘캄보디아 농업노동자119’ 사업이다.

고용허가제에 묶여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에서 제조업 이주노동자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8일 캄보디아 농업노동자119 출범을 맞아 국회에서 열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안전보건 및 노동권 실태와 과제’ 토론회에서 이진우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이 발제한 실태조사 결과는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실태 및 안전보건 실태를 드러내고 있다.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제조업 이주노동자와 농업 이주노동자 간의 격차다. 주당 노동일·노동시간·월간 휴무일 등 노동조건과 신체적, 정신적 건강수준 전반에 있어서 농업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함을 보여주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직장건강보험이 적용되고, 근로기준법 적용 및 산재보험 대상이 될 가능성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법적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농업이주노동자들은 직장건강보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직장건강보험 가입 요건이 되는 사업자등록증이 없어도 소규모 영농인들이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비용부담이 높은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산재보험의 경우 5명 미만의 소규모 자영농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은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제도적 허점을 악용한 고용주들은 여러 편법을 이용해 산재보험 가입을 피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주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여성이주노동자들은 고립된 농촌지역에서 성폭력의 위험까지 더해진다. 농업이주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차별과 착취에 놓여 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국제적 이동의 제한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의존해왔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이런 깨달음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나 노동권·건강권을 확장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고, 부족한 노동력을 더욱 혹독한 착취로 메꾸려는 시도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얼마 전 드라마 ‘D.P’가 한창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병영 내의 고질적인 갈굼과 학대의 문화 속에서 심신이 망가져 가는 병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악랄한 육체적 정신적 괴롭힘으로 인해 파탄상태에 이른 병사는 전역한 선임병에게 복수를 위해 찾아가 “도대체 왜 그랬냐”고 질문한다. 가해자의 대답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아서…”였다. 자신들만의 공동체 속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착취의 부끄러운 이면을 숨겨왔던 곳은 어디나 문제적이다. 군대 사회가 그랬고, 장애인 수용시설이 그랬다. 외딴 어촌과 섬마을 염전이 그랬고 이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농촌의 논밭이 또 그런 비상식의 공간이 되고 있다.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알고 서로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농촌사회에서 품앗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돼온 착취가 얼마나 문제적인 일인지 공동체가 자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드러내고 연결해야만 농업이주노동자들의 권리옹호를 외면해 왔던 근로감독과 안전보건 행정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속헹이 그러했듯 권리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그것을 지탱하는 삶의 조건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드러난다.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골병으로 쓰러지고 죽음에 이르기 전에 우리 사회가 성찰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장시간 노동, 골병을 부르는 노동에 시달리며 단절돼 병들고 다쳐가는 농업이주노동자들의 구조신호를 수신해야만 한다. 우리가 캄보디아 농업노동자119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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