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기후위기와 인권 관련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에서 복기수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타설팀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옥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반 국민보다 기후위기를 훨씬 더 체감하고 우려하고 있지만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정책 수립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탄소중립 사회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는 산업과 계층이 없도록 노동자 참여권 보장과 세밀한 정책방향을 설정하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10층 인권교육센터에서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인식과 국내·외 정책 동향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옥외 노동자 “기후위기로 생계위협·안전사고 대책 없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후위기로 피해를 보는 옥외 노동자의 분노와 우려가 쏟아졌다. 복기수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타설팀장은 “건설사는 기후변화로 (일을 못 하게 되면)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건설노동자는 기후변화로 근무일수가 줄면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고 안전사고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설계나 발주부터 ‘악천후수당’을 신설하도록 법제화한다면 건설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암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장은 “마트 배송노동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송을 해야 하는데 마트측은 물건을 가릴 비닐을 주지만 우비는 주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날씨가 좋지 않을 때도 평상시와 똑같이 움직여야 해서 (도로사정은 좋지 않은데) 시간 싸움을 하느라 교통사고도 많이 발생한다”며 “그럴 때는 기상청의 주의보 기준에 맞춰 배송코스를 줄이고 배송노동자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택배노동자 53% “기후위기 피해계층은 옥외 노동자”

이 같은 심각성은 인권위가 실시한 인식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인권위 의뢰로 연구를 수행한 사단법인 두루·법무법인 지평은 지난 6월14일~9월4일 일반인 500명, 청소년 600명, 농·어업인 200명, 옥외 노동자 200명 등 총 1천500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했다. 옥외 노동자는 택배노동자 100명, 건설노동자 50명, 방송노동자 50명을 대상으로 했다.

‘기후위기 이슈에 관심이 있다’는 응답은 평균 80.4%였으나 택배노동자 84.0%, 건설노동자 82.0%, 방송노동자 90.0%로 더 높았다. 기후위기를 언제 가장 많이 체감하냐는 물음에 폭염(택배 47.0%, 건설 40.0%, 방송 38.0%)을 가장 많이 꼽았다. 기후위기로 가장 피해를 받는 계층을 물었더니 조사 참여자 중 14%가 옥외 노동자를 꼽았지만, 당사자인 택배노동자(53.0%), 건설노동자(44.0%), 방송노동자(24.0%)는 평균보다 높게 스스로를 피해 계층으로 봤다.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서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견은 전체 60.4%였다. 옥외 노동자(택배 69.0%, 건설 78.0%, 방송 76.0%)는 그 비중이 훨씬 높았다.

“고용형태·성별·지역별 세미하게 정책 추진해야”

연구팀은 인식조사 외에도 건설·대리운전·배송(택배·마트배송·배달플랫폼·가전제품·집배)·가스점검 등 옥외 노동자와 폐기물선별·급식 등 실내 노동자를 직접 인터뷰했다. 지현영 변호사(녹색법률센터)는 “악천후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 노동자는 업무강도 강화와 안전사고 위험 증가를 체감하고 있지만 그 대책이나 기준이 부재하다”며 “옥외노동만큼이나 외부환경 영향을 받는 실내노동도 업무환경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서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대상자인 노동자 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며 “산업별로, 노동자 단위별로 정책을 내놓더라도 고용형태·성별·지역 여부를 구분해 세밀하게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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